"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차별화된 맛으로 고객 변화에 부응한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요섹남이 한국의 부엌 풍경을 바꾼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달라지는 우리 식문화를 조명했다. 각종 TV프로그램에서 '먹방'(먹는 방송)과 '쿡방'(요리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하는 한국 남성이 부쩍 느는 등 부엌을 중심으로 사회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전통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남성이 요리하는 것이 금기시됐지만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를 일컫는 '요섹남'이 신조어로 부상할 만큼 최근 들어 요리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반에 걸쳐 거세게 일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이 최근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3명 중 2명(65.2%)은 요리방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답했다. 먹방과 쿡방의 인기 비결에 대해서도 53.2%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성(75.3%)과 20대(68.8%) 등 나이가 젊고 트렌드에 민감한 시청자일수록 요리방송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먹방과 쿡방의 인기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식음료업계는 먹방·쿡방 열풍을 맞아 전략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는 등 고객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음식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뜨린 신제품을 선보이거나 아예 제품을 새롭게 단장해 출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먹방과 쿡방의 인기가 한동안 정체됐던 식음료업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장까지 창출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식음료업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을 쏟아내며 '맛 지도'를 바꾸고 있다. 농심 '짜왕'의 출시로 형성된 프리미엄 짜장 라면 시장은 기존 라면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다. 진한 불맛과 쫄깃한 면발을 강조한 짜왕이 인기를 모으자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프리미엄 짜장라면을 내놓고 주도권 탈환에 나섰다. 이로 인해 틈새 제품으로 취급받았던 짜장 라면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주력 종목으로 부상했다.
유업계도 발상을 전환한 전략 제품으로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일유업의 떠먹는 요구르트 '매일바이오 플레인'은 지난해 143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매출 38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우유의 영양성분을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칼로리와 지방 함량을 낮춘 것이 인기 비결이다. 남양유업의 '임페리얼 드림 XO'는 유아분유 시장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지난 1993년 출시 이후 분유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올라섰지만 최근 3대 영양소를 맞춤설계로 재단장하고 소화가 잘 되도록 단백질 성분을 강화하면서 꾸준한 품질 개선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요구르트 최초로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은 한국야쿠르트의 '쿠퍼스 프리미엄'도 최근 비타민B와 울금 추출물을 추가하는 등 성분을 보강해 고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외식업계도 건강과 영양을 앞세운 신제품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간단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 맛과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메뉴가 대세로 부상한 때문이다. 뚜레쥬르가 최근 선보인 '순땅콩호박' 시리즈는 국산 땅콩호박을 넣은 건강한 재료로 승부수를 던졌다. 던킨도너츠는 아침 메뉴인 '모닝콤보'를 4종류로 확대하며 바쁜 직장인의 아침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맥도날드는 고객이 직접 20가지가 넘는 식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프리미엄 수제버거 '시그니처 버거'로 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요리 방송의 인기로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식음료업계의 주도권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라지는 고객에 힘입어 업체들의 변화도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국내 식음료업계에 이른바 '맛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식음료업계의 신제품 경쟁은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나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왕교자'처럼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제품으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의 먹방·쿡방 열풍은 날로 팍팍해지는 일상을 음식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며 "주요 식음료업체들도 기존의 틀을 깨트리는 신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면서 고착화된 업계 판도에도 변화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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