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에는 유난히도 대형 사고가 많았다. 특히 2개월 사이에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두 개의 참사가 몰렸던 1995년에는 무속인인 '심진송' 신드롬까지 일 정도였다. 격변의 시기에 이 같은 대형참사까지 맞물리면서 취임 초기 90%를 넘어섰던 국정 지지율도 임기 말에는 한 자리 숫자까지 떨어졌다.
첫 번째 비보는 1993년 7월26일에 전해졌다. 승객 106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출발해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보잉737기는 기상상태 악화로 세 차례의 착륙을 시도했지만 결국 인근 해남 마산리 뒷산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66명이 사망했다.
10월10일에는 서해에서 여객선 훼리호가 침몰한다. 아시아나항공기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대형참사가 일어난데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인재'로 보도될 만큼 각종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취임과 함께 내건 하나회 척결로 90%를 넘어섰던 국정 지지율도 그해 말 70%대로 떨어지게 된다.
이듬해인 1994년 10월에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초유의 사고가 벌어진다. 아침 출근·등굣길을 재촉하던 32명이 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1995년은 대형사고로 인해 민심이반이 가장 극적으로 일어난 해다. 4월28일 오전8시께 대구 달서구 상인동 네거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불과 두 달여 뒤인 6월29일에는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이 사고로 각각 101명, 502명이 사망한다. 그해에는 김일성의 사망을 정확히 맞춘 무속인 심진송씨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서울을 휩쓰는 무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외신을 장식하기도 했다. 심씨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만큼 우리 사회가 뒤숭숭했다.
마지막 해인 1997년에도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해 229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으로 다시 국정 지지율을 70%까지 끌어올렸지만 IMF 구제금융이 결정된 후 다시 수직 하락해 한 자리 숫자로 초라하게 임기를 끝마쳤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첫 번째 비보는 1993년 7월26일에 전해졌다. 승객 106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출발해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보잉737기는 기상상태 악화로 세 차례의 착륙을 시도했지만 결국 인근 해남 마산리 뒷산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66명이 사망했다.
10월10일에는 서해에서 여객선 훼리호가 침몰한다. 아시아나항공기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대형참사가 일어난데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인재'로 보도될 만큼 각종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취임과 함께 내건 하나회 척결로 90%를 넘어섰던 국정 지지율도 그해 말 70%대로 떨어지게 된다.
이듬해인 1994년 10월에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초유의 사고가 벌어진다. 아침 출근·등굣길을 재촉하던 32명이 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1995년은 대형사고로 인해 민심이반이 가장 극적으로 일어난 해다. 4월28일 오전8시께 대구 달서구 상인동 네거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불과 두 달여 뒤인 6월29일에는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이 사고로 각각 101명, 502명이 사망한다. 그해에는 김일성의 사망을 정확히 맞춘 무속인 심진송씨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서울을 휩쓰는 무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외신을 장식하기도 했다. 심씨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만큼 우리 사회가 뒤숭숭했다.
마지막 해인 1997년에도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해 229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으로 다시 국정 지지율을 70%까지 끌어올렸지만 IMF 구제금융이 결정된 후 다시 수직 하락해 한 자리 숫자로 초라하게 임기를 끝마쳤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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