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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등 '쩐주'들로부터 자금 조달
공식·비공식 경로통해 잠재매물 발굴
인수 후엔 기업 경영 직접 참여하기도
투자 성과 따라 수십억대 성과급 매력
고강도 업무·실패땐 곧 퇴출 '외줄타기'
# 국내 한 중견 사모펀드(PEF)에서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A상무는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전문대학원(MBA)으로 이어지는 금융계 정석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후 홍콩의 한 헤지펀드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근무하다 지난 2012년 처음 국내 PEF 시장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인수합병(M&A), 기업가치 제고(경영), 자금 회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정적이지 않고 다이내믹한 점이 PEF 시장의 매력"이라며 "거대 조직의 한 부속물이 아닌 소수의 투자 별동대에서 윗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PEF에 최고급 인재가 몰리는 것은 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다 소수 정예 조직에서 수백억원~수천억원의 자금을 굴리며 기업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오너' 역할까지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100% 완벽한 직업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법. 고액 연봉과 경영 참여 등 PEF의 '낭만'의 이면에는 고된 업무 강도에 투자 실패 한 건으로 곧바로 업계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운용역의 현실 역시 존재한다.
우선 PEF 운용역의 삶을 들여다보기 전에 앞서 PEF의 업무 '생애 주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PEF란 소수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을 모아 특정 기업의 주식을 인수한 후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수익을 내는 펀드를 의미한다. 이에 PEF의 업무 사이클은 크게 자금조달(펀드 레이징)-투자자산 발굴(딜 소싱)-투자(기업 인수)-경영(사후관리) 및 자금 회수(엑시트)로 구성된다. 당연히 업무 단계별 PEF 운용역의 일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PEF의 핵심, 펀드 레이징
연기금·공제회·보험사 등 국내 소수의 '쩐주'들로부터 자금을 긁어모으는 펀드 레이징은 PEF의 첫 관문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실탄'을 확보하지 못하면 PEF의 존재 의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 '석 자', 운용 철학, 네트워크 등 무형의 가치만을 무기로 삼아 기관으로부터 수백억원~수천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펀드 레이징을 자본시장의 '종합 예술'이라고 칭하는 이유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들은 통상 1~2년에 한 번씩 출자 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자금을 운용할 PEF를 선정한다. 이른바 공개 '콘테스트'다. 통상 이 콘테스트 준비는 PEF를 이끄는 핵심 운용인력인 '키맨(key man)'이 책임진다.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나 한앤컴퍼니의 한상원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PEF의 과거 트랙 레코드와 같은 정성적인 평가도 물론 꼼꼼히 살펴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키맨의 운용 철학"이라며 "MBK가 아닌 MBK의 김 회장을 믿고 돈을 맡기는 개념인 만큼 제안서 제출-프레젠테이션-인터뷰 등 콘테스트 전 과정에서 키맨 인터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운용사 간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민연금이나 교직원공제회 등 출자 규모가 큰 기관의 콘테스트에서는 다른 PEF를 비방하는 투서가 난무하고 실무진에 이른바 '윗선'을 통한 압력이 들어오기도 한다. 국내 대형 PEF의 한 대표는 콘테스트 최종 선정 1~2주일을 남겨놓고는 아예 언론 등 외부와의 접촉을 끊는다. 혹여나 말실수라도 했다가 콘테스트 결과에 지장이 생길 수 있음을 염려하는 것이다. 공제회의 한 관계자는 "정기 출자를 진행하고 나면 과중한 스트레스로 살이 3~4㎏씩 빠진다"며 "자금을 받기 위해 물밑에서 진행되는 작업들이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아메리카노 5잔 마시면 하루 끝나요"
'실탄'을 확보한 후 투자자산을 발굴하는 단계에서는 '미팅으로 시작해 미팅으로 끝을 맺는' 일과가 펼쳐진다. 이른바 '매물'에 대한 정보는 공식·비공식 등 다양한 경로로 들어온다. 여러 방면에 발이 넓은 외국계 IB들이 매물을 가져오거나 과거 투자를 통해 연을 맺은 기업들이 직접 물건을 소개해주는 경우가 비공식 정보 유통에 해당한다. 이 정보를 활용해 잠재매물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해당 회사의 경영진을 접촉하며 필요하다면 직접 업체를 찾아가 회사 분위기를 들여다본다. 국내 중견 PEF의 한 운용역은 "보통 하루에 4~5번 정도 미팅을 진행한다"며 "아메리카노로 시작해 아메리카노로 끝나는 일과"라고 소개했다.
잠재매물 등에 대한 발굴 과정을 거쳐 '점찍은 기업'에 대한 실제 인수 작업이 시작될 때부터 운용역들의 업무 '피치'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거래 규모에 따라 3~5명씩 '소수 별동대'를 구성해 본격적인 인수전에 뛰어든다. 해당 기업에 대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고 이후 실제 기업의 과거 5년 치 회계자료·세무자료 등 모든 자료를 검토·분석하는 실사를 한 달여간 진행한다. 소수 인원으로 방대한 기업 자료를 샅샅이 검토해야 하는 탓에 야근에 야근을 거듭해야 하는 시기다. 실사·입찰 등을 마무리하고 본 계약을 체결할 때에 이르면 업무 강도가 정점에 달한다. 입찰계약서에 담을 세부 조항 등을 놓고 매각 측과 끝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특히 이번 홈플러스 인수전과 같이 매각자 측에서 고용 보장, 위로금 지급 등 민감한 조건을 들고 나오면 물리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중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30대 '오너'의 느낌
기업을 인수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경영의 영역이다. 본계약 체결 등 인수 과정을 마친 후에는 3~6개월간 투자 대상 기업에 파견돼 3~5년간의 경영계획을 직접 수립하는 조직융합관리(PMI·Post-Merger Integration)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에 PEF 운용역은 대상 기업의 생산 시스템, 각 사업 부문, 인사, 노조, 재무 등 전 영역을 들여다보며 월별·분기별·연도별 목표실적 등을 설정한다. 이후에는 이 PMI 자료와 실제 기업의 '숫자'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경영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기업 오너(대주주)로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을 직접 진두지휘할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출신의 한 PEF 운용역은 "컨설팅 재직 시절에는 몇 달에 걸쳐 만든 컨설팅 자료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아 허무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러나 PEF에서는 내 의견이 경영상 의사결정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30대 오너가 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수십억원대 성과급까지
젊은 '엄친아'들이 PEF에 몰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억대 연봉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융지주 산하가 아닌 독립계 PEF의 경우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연봉 체계가 구성돼 있다. 기본급은 운용사마다 다르지만 외국계 IB 수준인 7,000만원~1억원(초봉 기준) 수준으로 책정되며 성과급은 투자 성과에 따라 결정된다.
PEF 보수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성과급에 특별한 '상한선'이 없기 때문에 투자 성과에 따라 수억원~수십억원대의 '대박'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운용 펀드의 청산 시점에 연환수익률(IRR)이 8%를 넘어가면 그 초과수익의 20%를 PEF가 챙긴다. 예를 들어 PEF가 기관투자가로부터 모은 자금을 토대로 1,000억원의 펀드를 운용해 1년 후 1,200억원으로 불려 2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청산했다면 성과 지급 기준인 8%(80억원)를 넘어서는 초과수익분(120억원)의 20%(24억원)가 PEF의 몫으로 남는다. 자산 운용 규모가 커질수록 PEF 몫으로 배분되는 성과보수의 절대 규모가 크게 불어나는 만큼 개별 운용역이 수억원대의 성과급을 챙겨가는 일도 가능하다.
국내 금융지주 산하 PEF의 한 운용역은 "외국계 IB가 국내에서 M&A 자문을 하고 받아가는 수수료 총액은 거래 규모가 조 단위여도 300만달러를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으며 이는 곧 개별 직원이 받아갈 수 있는 성과급에 상한선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며 "그러나 PEF의 경우 성과보수 규모에 제한이 없고 철저하게 투자 성과에 연계되기 때문에 개별 운용역이 성과급으로 수십억원을 챙겨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석기자 pj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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