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車 부품 회사 창업… 年매출 6,600억 중견사로 키워
안정적 수익·사업 다각화 위해 美 트럭메이커 나비스타에 수출
거래 기업 최우수 기업상도 수상
"자동차산업 기술 보편화 되고 있어 생존 위해선 선제적 대응 이어가야"
20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서 있다가 나이 마흔에 창업에 도전해 연매출 6,6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키운 여성 사업가가 있다. 대구와 창원 등지에 자동차부품업체 4곳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효림그룹의 한무경(57·사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 회장은 24일 서울 삼성동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을 만나 "사업을 하면서 숱하게 위기가 닥쳐 왔지만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겼다"며 "위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 덕분에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에서 문헌정보학 석박사를 마쳤다. 교수를 꿈꾸었던 그는 충실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고 20~30대를 그렇게 대학에서 보냈다.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가 사업의 길로 들어서는 데는 뜻밖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대구의) 은행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사업을 해 보면 어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주요 거래처인 쌍용중공업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어려워진 자동차사업부문을 매각하려는데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하셨죠."
자동차 부품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던 한 회장은 처음에는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IMF 체제 직후 다시 소비가 살아나면서 자동차 시장에도 호황기가 찾아올 거라는 확신에다 자산인수방식의 매각이었던 만큼 자금 부담이 덜하다는 점이 창업 의욕을 불태웠다. 마침내 1998년 10월 '큰 수풀'이라는 뜻의 '효림'을 사명으로 내걸고 창업에 나섰다. 창업하자마자 그는 기계용어집부터 사서 공부했다. 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수첩에 적어와 용어집을 보면서 모르는 용어를 익혔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그림으로 그려 용어와 부품을 연결시켰다. 이후 몇 년간 호황을 맞아 매출은 늘었지만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를 위해서는 사업군을 다각화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에 2002년 자동차 모듈 사업 진출을 결정하고 경기도 평택에 효림정공을 세웠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대 고객인 쌍용차를 설득하는 게 관건이었다. 끈질긴 설득 끝에 하체 모듈(일명 새시 모듈)을 납품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에 나섰다. 2차, 3차 협력사로부터 수백개의 부품을 공급 받아 하체 모듈을 완성해 쌍용차에 납품했다. 구동부품 생산에서 하체 모듈 납품까지 사업군이 늘어나며 해외 판로 개척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소재인 단조까지 함께 갖춘 부품 공급을 원했던 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결국 한 회장은 내부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 2005년 단조소재 전문기업을 인수해 효림에이치에프를 설립했다. "현재는 문제가 없지만 쌍용차 한 곳만 의존하면 나중에 큰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 3대 트럭 메이커인 나비스타와 꾸준히 접촉하면서 저희 브랜드를 알렸어요. 그런데 나비스타에서는 단조 소재 공정을 갖춘 공급처를 원했고 선제적 투자라는 판단을 갖고 효림에이치에프를 설립했던 거죠."
한 회장은 끈질긴 설득 끝에 2008년 말 나비스타와 첫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납품량은 늘어나면서 올해 나비스타가 선정한 '다이아몬드 서플라이어상'을 수상했다. 나비스타에서 거래 기업을 평가해 최우수기업에 수여하는 상으로 한국 업체로는 최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지난해 효림산업 989억원, 효림정공 2,260억원, 디젠 2,979억원, 효림에이치에프 375억원 등 총 6,6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는 매출 8,000억원이 목표다. 한 회장은 자동차 부품산업이 레드오션이라는 지적에 대해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게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모든 제품의 가격이 하락 추세인데다 기술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미래 변화상을 먼저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오늘의 레드오션이 내일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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