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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경기 시계제로… 현금이 최우선" 중위험 상품도 눈길 안줘
신흥국 조정 후 저가매수 위한 실탄 확보 나서
메자닌사모펀드 등 절대수익상품 비중은 유지
투자매력 커진 달러예금·달러RP에 눈돌리기도
미국 12월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면서 코스피지수 2,000선이 붕괴된 10일 100억대 자산가인 김진훈(58·가명)씨는 보유 중이던 국내 주식형펀드를 대거 환매해 현금 비중을 전체 금융자산의 40%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대신 현금의 일부를 달러자산(달러예금·달러RP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조만간 단행되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프라이빗뱅커(PB)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이 오는 12월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29.11포인트(1.44%) 떨어진 1,996.59로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10월6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코스닥지수는 15.14포인트(2.25%) 급락한 656.70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시장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85%에 달하는 만큼 코스피지수 급락은 개인들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최근 금융시장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 강남 등의 고액자산가들은 한발 빨리 움직이고 있다. 주식·주식형펀드 등 위험자산에 대한 관심을 거둬들이고 예금과 달러·채권 등 안전자산 위주로 수비에 나서고 있다는 게 주요 증권사 PB들의 전언이다.
지표로도 이러한 자금이동은 나타나고 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9일 기준 43조3,838억원으로 6일의 미국 고용지표 발표 직후 1거래일 만에 무려 2조5,000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말(39조7,387억원) 대비로는 3조원 이상 늘어났다. 투자자 예탁금도 9일 20조7,919억원으로 6일의 20조2,371억원 대비 5,000억원가량 늘었다.
이는 최근 주식시장 불확실성으로 자산가격이 낮아질 것을 염두에 둔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에 몰렸던 자금을 찾아 현금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강남지역 자산가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서재연 KDB대우증권 PB클래스갤러리아 이사는 "전반적으로 투자에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퍼지면서 주식에서 돈을 빼 유동성 자산으로 옮기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금자산의 일부를 달러에 투자하는 투자자들 역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신한·한투·대신·대우 등 4개 증권사에 따르면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잔액은 1월 4억2,940만달러에서 10월 말 기준 5억5,206만달러로 28% 늘어났다. 달러RP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소정의 이자를 더해 다시 매입하는 조건으로 파는 달러화 표시 외화채권이다.
남경욱 삼성증권 강남파이낸스센터 PB팀장은 "12월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상황에서 달러 자산 투자 매력이 더욱 커지며 자산가들이 달러예금과 달러RP 등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형펀드 등 위험자산에서 뺀 자금을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상품인 메자닌사모펀드·분리과세하이일드펀드 등에 투자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메자닌펀드는 주식과 채권의 특성을 모두 가진 하이브리드 형태로 채권과 주식의 중간위험 단계에 있는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에 투자한다. 시장이 불확실하거나 조정을 받을 때는 채권으로 유지하다 상승 국면에서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를 받아 초과수익을 낼 수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메자닌사모증권투자신탁2(주식혼합)의 경우 10일 기준 연초 이후 설정액이 561.85%나 증가했다.
유리유럽플러스전환사채사모증권투자신탁1[채권혼합-재간접형]ClassC-F도 200% 늘었다.공모주 투자를 위한 분리과세 하이일드펀드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이 상품은 총자산의 60%를 신용등급 BBB+ 회사채에 투자하고 나머지 40%는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고위험 상품이지만 공모주 청약시 총 배정물량의 10%가 하이일드펀드에 우선 배정되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9일 기준 분리과세 하이일드펀드 설정액은 2조7,468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3,039억원가량 늘었다. 특히 사모형 설정액은 2조126억원으로 8,911억원 증가했다. 최근 은행들이 발행을 늘리고 있는 코코본드도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투자 대안으로 각광 받고 있다. 이 같은 상품들은 대개 연간 수익률이 4~7% 안팎이다.
하지만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대한 자산가들의 수요는 한정돼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성장둔화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거액자산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손해 보지 않고 자산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는 게 일선 PB들의 설명이다. 한 증권사 PB는 "안정성이 높은 상품을 소개하더라도 고객들이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며 "유동성을 확보해야 나중에 찾아올 투자 기회를 살릴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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