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은 '국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지상과제였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큰 칼을 거침없이 휘둘렀고 30대 재벌그룹은 그 소용돌이 안에서 생사가 나뉘었다. 당시에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로 국민 모두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던 것이 큰 동력이 됐지만 돌이켜보면 시장 원리를 간과한 정부 주도의 '거친' 구조조정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당시 정부는 '5대 재벌'의 경우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과잉 생산설비를 자체적으로 조정하는 '빅딜'을 유도했다. 나머지 6~30위권 재벌은 스스로 구조조정하기가 벅차다고 보고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1998년 7월 정부와 재계는 5대 재벌그룹 소속 8개 업종, 17개 기업이 빅딜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며 6~30대 재벌 소속의 100개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효과는 있었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방식'에 급제동이 걸렸다. 5대 재벌의 사업 숫자는 1997년 평균 30개에서 2001년 23.2개로 줄었다. 30대 재벌의 계열사 수도 1998년 무려 804개에서 2001년 624개로 22% 줄었다. 제조업 분야의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은 1997년 말 약 400%에서 2001년 말 182%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그룹의 해체다. 1997년 정부는 대우그룹에 쌍용자동차 인수를 압박한다. 대우그룹은 재계 2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유혹에 쌍용차를 인수한다. 그리고 이는 대우그룹에 결정타가 돼 1999년 11월1일 그룹 완전해체의 시발점이 됐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업 간 짝짓기'를 하다 보니 인수한 기업이 도리어 몰락하는 '승자의 저주'도 생겨났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 간 합병이 대표적이다. 당시 LG반도체는 탄탄한 기업이었으나 정부는 재계 1위(현대)라는 특수성과 대북사업 영향 등을 감안해 현대에 LG반도체를 몰아줬다(하이닉스반도체). 하지만 시장원리를 등한시한 일방적 빅딜로 하이닉스는 합병 2년도 안 돼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정부의 팔 비틀기로 채권단 은행은 워크아웃 대상 100개 기업에 86조원의 채무조정, 4조5,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했지만 이 중 약 30%인 29개가 도산했다. 3년이 지나도 35개 기업이 계속 워크아웃에 남아 있었다. 나머지 36개 기업은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기업 구조조정이 사업 구조조정보다 손쉬운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진행된 것도 문제였다. 빅딜 대상 9개 업종의 경우 유휴자산 매각은 6.6%에 그쳤으나 인력은 14%나 감축했다. 기업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실업자를 양성하면서 국민들의 고통으로 귀결됐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