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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영화&경제] (2)‘로맨스 빠빠’와 딸바보 신드롬

로맨스 빠빠(오른쪽)가 결혼하는 큰딸에게 덕담을 건네고 있다. /출처=유튜브





#사회 곳곳에서 ‘딸바보 신드롬’

남아선호 사상이 옅어지면서 아빠들 사이에서 ‘딸바보’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아빠들의 딸 사랑은 열풍이라 할 만큼 뜨겁다. 친구 같은 아빠라는 뜻의 ‘프랜디(friend+daddy)족’에서부터 자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는 ‘스칸디 대디’, 그리고 사회적으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알파 대디’ 등 관련 유행어도 다양하다. ‘딸바보 신드롬’은 젊은층에서 확산속도가 더욱 빠르다. 최근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 유아용품 시장에서는 이불은 물론 의류와 내의·식기에 이르기까지 남아보다는 여아를 위한 제품이 압도적으로 판매량이 많을 뿐 아니라 캐릭터의 경우에도 겨울왕국·프린세스 등 여아용 제품이 요괴워치·어벤저스 등 남아용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기야 통계청 조사결과 올해 국내 여성 인구가 남성을 1만명 이상 추월해 우리나라도 이미 여초(女超) 시대에 들어섰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를 부탁해’ 등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딸바보 아빠들이 집중 조명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로맨스 빠빠 가족들이 출근준비를 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60년대 한국영화에도 지독한 ‘딸바보’

영화 ‘로맨스 빠빠’(1960년·감독 신상옥)에서의 아빠(김승호)를 보면 영락없는 딸바보다. 이 양반 맏딸(최은희)에게 하는 말 좀 들어볼까? “얘 세상에 나만큼 널 사랑해줄 사람은 다시없을 것 같다. 그러니 너 아예 시집갈 생각 말아라.” 한술 더떠 그는 “제가 로맨스 빠빠예요. 이제 겨우 쉰 두 살 밖에 되지 않는 나보고 노망을 부린다고 해서 애들이 붙여준 별명이 로맨스 빠빠예요”라면서 “인생의 낭만을 갖는다는데 왜 노망이죠?”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아빠의 낭만에 불만인 자식들도 있다. 둘째딸(도금봉)은 “우리집은 가난뱅이예요 아버진 절보고 정신적 생활을 가질줄 알아야 된다고 하시지만 정신적 생활이란 결국 무능하고 궁상맞은 것밖에 더 있겠어요? 난 불만이 많아요”란다. 막내아들(신성일)은 아예 “저희는 아버지의 무능의 희생자”라고 선언한다.

하긴 그렇다. 로맨스 빠빠의 행동은 하나같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여대생인 둘째딸의 친구들이 하이킹을 가자고 집으로 찾아왔을 때 딸이 바지가 없어 못가겠다고 거절하자 아빠의 남자바지를 입고 가라고 내밀 정도다.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는 둘째딸의 노발대발을 당해도 싸다. 자신의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땐 더 가관이다. 도둑과 마주 앉아 정종 잔을 기울이는 것도 모자라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보채기까지 한다. 심지어 “20년 다닌 직장을 잃고 만삭의 아내를 돌볼 길 없어 도둑이 됐다”는 말에 부엌에 들어가 미역을 한아름 챙겨주려 한다.

로맨스 빠빠(왼쪽)가 집에 든 도둑과 술잔을 나누고 있다. /출처=유튜브



#직장에서 감원 당하고 거리를 전전

낭만에 대한 혹독한 대가였을까. 로맨스 빠빠는 자신이 다니는 보험회사에서 감원 대상에 올라 내쳐지고 만다. “높은 연세에 일도 고되니 후진을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는 냉정한 해고통보와 함께 퇴직금과 월급마저 큰딸의 결혼자금으로 가불한 돈으로 전액 공제돼 빈털터리가 된 채로 말이다. 그래도 로맨스 빠빠는 애써 태평함을 가장한다. “이젠 된 사람 안된 사람 앞에 굽실거릴 필요도 없고 뇌물의 유혹도 받을 일 없고, 완전 자유인이다”라고 공허하게 되뇌이면서.

하지만 빈털터리 실업자 신세는 고달프다. 감원 사실을 숨긴채 매일 아침 출근하는척 나와서는 파고다공원, 시청앞, 종로 등 거리를 온종일 헤맨다. 과거의 친분을 엮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재취업을 청탁도 해보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한다. “요 며칠 전에도 감원을 했다”느니, “자네가 맡을 일이 통 없다”느니 거절이유도 가지가지다. 급기야 월급날이 돌아오자 그는 애지중지하던 금시계를 팔고 아내에게 ‘월급봉투’를 내미는데….



로맨스 빠빠(오른쪽)가 직장에서 해고를 통보받고 있다. /출처=유튜브



#가장의 실직은 가계의 붕괴로 이어져

뒤늦게 아빠의 실직을 알게 된 가족들은 삯바느질(엄마)에 타이핑(둘째딸)과 과외(막내딸)까지 해가며 살림에 보탬이 돼보려 분주하다. 하지만 가장이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리 자식 사랑이 지극한 ‘딸바보’라도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집안 살림도 일순간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아버지가 생계를 담당하고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 나가는 가운데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나는 구조가 ‘정상 가족(normal family)’의 전형으로 굳어지다시피 한 한국 사회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가장의 실직은 곧 가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실직당한 로맨스 빠빠(오른쪽)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시계를 팔고 있다. /출처=유튜브



#가계가 부실한 경제 건강할 수 없어

경제학의 관점에서 가계가 부실한 경제는 건강할 수 없다. 가계가 소비를 늘리느냐 줄이느냐에 따라서 경기가 사느냐 위축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계에서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아버지가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면 가계소비가 붕괴되는 것은 물론 국민경제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암담하다. 일자리 불안을 느끼는 가장들도 너무 많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현재 자신이 실업 상태라고 생각하는 체감실업률은 50대와 60가 14.8%였고 40대의 경우 15.3%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선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계에서 소비를 늘려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고 기업이 성장해 경제가 발전하는 선순환구조가 복원될 수 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임금피크제다 정리해고다 감원이다 아버지들의 고용사정은 더욱 나빠지고만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로맨스 빠빠(오른쪽)가 생일을 맞아 자녀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다. /출처=유튜브



#그래도 난 ‘로맨스 빠빠’이고 싶다

영화 속 막내딸(엄앵란)은 로맨스 빠빠에게 불만이 없단다. “우리 아버지는 막내둥이라고 저를 제일 귀여워해 주시거든요. 그렇죠 아빠?”라고 말하는 모습에 애교가 넘친다. 얼마 전 필자는 딸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 결혼·가족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6가지 덕목 ‘(1)모든 것을 용서로 끝내라 (2)허락을 구하라 (3)감사를 표하라 (4)상대방이 모든 잠재력을 나타내도록 도와줘라 (5)낭만을 죽이지 마라 (6)쉽게 포기하지 마라’였다. 이 가운데 마음에 끌리는 것 하나를 골라보라고 했더니 딸이 보낸 회신은 ‘낭만을 죽이지 마라’였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로맨스 빠빠가 되고 싶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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