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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처럼 과학자 北 상주 허용…
北 점진적 문호개방 추세에도 우린 5·24조치 후 교류 단절
정부차원 공식지원 없어 애로
일각 해커양성 의혹 사실무근… 美 대사조차 긍정적으로 평가
과학기술 발전 열올리는 北 소학교서 태블릿 교과서 활용
SW수준도 선진국에 안 뒤져
"우리도 미국처럼 과학자의 북한 상주를 허용해줘 포항공대나 카이스트(KAIST)에 있는 제자들이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포항공대(포스텍·POSTECH) 총장 출신으로 남북한 최초 합작대학인 평양과기대 박찬모(80·사진) 교수(명예총장)은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에 온 길에 15일 저녁 서울 교대역 근처 찻집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평양과기대는 외국 교수진이 100% 영어로 IT, 경영, 농생명, 의학 등을 가르치는 국제화 대학"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평양에서 6개월을 머무르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머지는 한국과 미국 메릴랜드 집을 왕복하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미국과 유럽 등 외국인 교수진 100명인데 이 중 60% 이상이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일부 한국여권 소유자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영주권자도 포함돼 있다. 500명의 학부생과 100명의 대학원생을 위해 무보수로 근무한다. 박 총장도 주 3일 컴퓨터 그래픽과 시스템 시뮬레이션, 가상현실을 가르치고 있다.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허가받아 노무현정부에서 100만달러 지원을 받고 소망교회 등 국내외 지원으로 2009년 대학을 완공했는데, 우수 학생들의 산실일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가 국제화하는 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박 총장의 설명이다. 이 대학은 북한이 100만㎡ 부지를 제공하고 남한과 해외의 지원을 받아 17동의 건물과 실습기자재를 갖춰 2009년 개교해 2010년부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 국제금융 및 경영대학, 농생명과학대학, 전자 및 컴퓨터공학대학으로 출발해 올해 의학대학(치과,보건은 올 가을, 의과와 간호학·약학은 내년 개소)까지 분야를 넓혔다. 다만 북미관계가 단절돼 있어 기기는 주로 중국산으로 공부한다.
그동안 김일성종합대·김책공업대·평양컴퓨터기술대 등에서 1~2년간 다닌 학생 중 수재들만 뽑았으나 내년부터는 일반 고교 출신 우수학생도 선발할 방침이다. 여학생은 올해 처음으로 10명이 들어왔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대학원생 40여명, 작년 11월 대학생 100여명, 올해 3월 대학원생 20여명이 졸업한데 이어 20여명이 이미 유럽 등으로 유학을 다녀와 석사를 땄고 현재 10여명이 해외에서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박 총장은 "해외유학을 많이 갔으면 좋겠는데 학교재원이 부족해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유학을 떠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평양과기대는 국제학술대회도 올해까지 격년으로 3번을 개최했다. 지난 10월 고건 전 국무총리와 한헌수 숭실대 총장도 다녀온 학술대회에 같이 했던 피터 아그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노벨화학상 수상자)는 "평양과기대는 미국과 북한의 외교 관계와 경제교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인이 상주하는 유일한 현지시설"이라며 "북한 학생과 과학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내·외 관심과 지원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박 총장은 호소했다. "김진경 총장이 후원금을 모집하느라 여기저기 애를 많이 쓰는데,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단체 등에서 후원을 받아 운영하지만 남한은 (2010년 대북 교류·지원을 전면 금지하는) 5·24조치로 인해 공식적으로 지원할 수 없어 애로가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북한발 해킹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평양과기대를 '해커양성소'로 보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매번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일부 탈북자가 방송에 나와 평양과기대에서 해킹을 가르친다고 주장했는데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며 "매년 미국 국무부의 로버트 킹 인권대사 등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양과기대의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협조를 구하고 있다"며 "기독교인이 중심이 돼 만든 대학에서 해커를 키우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킹 대사도 평양과기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잘라 말했다.
박 총장은 북한의 수준높은 소프트웨어 파워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남한보다 하드웨어는 뒤떨어져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며 "애니메이션, 기계언어, 의학 관련 등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평양과기대학원생이 만든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여주며 학생들의 소프트웨어 수준이 높다고 밝혔다. 영상은 손에 센서(웹카메라)를 연결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애니메이션 캐릭터(여성 외국인)가 여러 종류의 힙합 춤을 추도록 한 과정이 담겨 있다. 센서를 통해 동작을 인지하고 이를 가상현실로 연결할 정도로 소프트웨어가 발전한 것이다. 그는 "학생이 스스로 서양 문화인 힙합 주제를 택해 미국 MIT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스크래치)를 가지고 만들었다"며 "교육과정이 미국 MIT나 UC버클리와 비슷하며 교수와 학생이 각각 교수아파트와 기숙사에 머무르며 식사도 같이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평양과기대는 학비가 없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매월 10달러 전자카드를 지급해 학용품이나 생활필수품을 사도록 한다" 며 "우수 학생은 군 복무(통상 10년)를 면제받게 돼 기를 쓰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전했다.
박 총장은 "북한의 소학교(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수학 시간이 남한보다 1.5~2배 많다"면서 "컴퓨터 교육 수준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아직 보편화가 안 된 전자 교과서를 북한에서 북한판 태블릿 '심지연'을 통해 대부분 소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박 총장은 지난 2000년 통일IT포럼 회장을 할 당시부터 평양을 방문하며 남북 IT교류 협력을 다졌다. 이후 연변과학기술대 총장(1993년부터~)을 하고 있는 김진경 현 평양과학기술대학 총장(미국 시민권자)과 함께 평양과기대 설립을 주도했고,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과학기술특별보좌관에 이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앞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석· 박사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3년 신설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 교수, 1979년 미국 워싱턴 D.C.의 가톨릭대 전산학 주임교수로 일하다가 1989년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한 뒤 총장을 역임했다.
/정리=김지영기자 jikim@sed.co.kr
/대담=고광본 정보산업부장 kbgo@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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