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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뚜껑을 연 삼성물산의 조직개편안은 예상외로 '안정'이었다.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이 건설과 패션, 상사, 리조트·건설을 2대 부문 체제나 최소한 3대 부문으로 바꾸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지만 결과는 현 체제 유지였기 때문이다. 최치훈(건설), 김신(상사), 김봉영(리조트), 이서현(패션) 등 4인 대표체제도 그대로다. 특히 상사부문은 기존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미래전략실에서 친정으로 복귀한 부윤경 부사장은 화학소재 사업부장을 맡는 정도다. 패션 부문은 영업을 강화한다. 이서현 사장이 '원톱 경영자'로 나선 패션 부문은 기존 상품본부 등 사업본부를 총괄하는 '상품 총괄본부'를 신설하고 이번 인사에서 승진한 박철규 부사장을 총괄본부장에 임명했다. 기존의 브랜드별 직제도 직무별로 개편했다.
세부적인 변화는 있지만 4대 부문 조정 같은 변화는 없었다. 사장단 인사에 이어 큰 움직임이 없는 셈이다.
이 같은 기조는 이날 조직개편을 단행한 삼성전기에서도 엿보인다. 자동차 전장부품을 차세대 먹거리로 선택한 삼성전기여서 관련 조직 신설이 예상됐지만 현 신사업추진팀 체제가 유지됐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지난 4월 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양대 사업부 체제로 개편해 일부 임원들이 이동하는 것을 빼면 큰 모멘텀이 될 만한 조직개편은 없을 것이라는 게 내부 분위기다.
그룹 내 신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바이오 쪽도 큰 변화가 없다. 금융계열사들도 눈에 띌 만한 개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 계열사의 관계자는 "지금 체제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며 "인력충원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에서도 초격차 전략을 쓰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삼성SDI와 홍원표 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실장(사장)을 신임 솔루션사업부문 사장으로 임명한 삼성SDS는 관련 조직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큰 틀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단 삼성SDS의 경우 조직개편 시점이 다른 계열사에 비해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내부 목소리가 나온다. 결과적으로 상당수 계열사가 대대적인 변신을 꾀하기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이달 초 있었던 사장단 인사를 두고 재계에서는 '이재용식' 계단경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적인 내용이 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격적인 조직개편은 아니라고 보인다"며 "한 번에 다 바꾸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고 했다.
관심은 삼성전자다. 기존의 반도체와 생활가전·모바일의 3대 체제는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 분야도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나 "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지만 신종균 대표를 모시고 잘 해보겠다"며 "큰 조직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대규모의 변동은 없을 확률이 높다. 이 또한 삼성그룹 전체적으로 큰 그림에서는 올해 조직개편이 안정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분석이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지난해 MSC(미디어솔루션센터)를 폐지한 데 이어 올해 들어 DMC(디지털미디어센터) 연구소 인력을 대폭 축소하며 사업부로 전환 배치했다. 디지털 카메라 사업도 독일과 영국 등 유럽시장에서 판매를 중단하는 등 사업 축소에 나섰다.
관건은 신사업이다. 삼성이 잘 해왔던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SW)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많다. 삼성전자 내에서는 독자적 스마트운영체제(OS)인 타이젠과 SW 솔루션 '녹스', 모바일 결제 플랫폼 '삼성페이'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 확대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가상현실(VR)·웨어러블도 이에 포함된다. 스마트카를 비롯해 계열사의 자동차 관련 사업을 삼성전자가 주도할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아우디와의 협력을 발표하며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삼성 내부적으로도 반도체와 배터리, 전장 부품을 아우르는 종합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에 이를 담당할 구심점이 생길지가 관심사다. 의료기기사업도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 내부적으로도 중량감이 있는 전동수 전 SDS 대표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전동수 사장이 의료사업 쪽에서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김영필·이종혁기자 susop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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