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가들의 '셀 코리아' 행진이 역대 4번째로 길어졌다. 전날 중국발 아시아 금융시장의 쇼크에서 드러났듯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자금 이탈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증시를 둘러싼 투자 여건이 외국인 역대 최장 기간 연속 매도세를 기록했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지적까지 내놓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1,900억원어치에 가까운 주식을 내다 팔며 지난해 12월2일부터 시작된 순매도행진을 22거래일째로 늘렸다. 이로써 지난 2008년 1월3~31일(총 21거래일)을 제치고 역대 4번째로 긴 연속 순매도 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총 3조7,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빼내갔다.
이번 외국인 순매도 행진은 지난달 7년 만에 '제로금리' 시대를 끝낸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기폭제가 됐다. 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화 강세와 신흥국 금융시장의 불안 등을 우려한 외국인이 지난달 중순까지 연일 2,000억~3,000억원대의 매도물량을 쏟아내며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았다. 금리 인상 이후 그동안 증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안도감에 지난해 말에는 매도규모가 1,000억원 미만까지 줄었지만 새해 증시 개장일 터져 나온 중국발 악재가 다시 외국인의 매도세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 경기의 불안은 자원수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결국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못할 경우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이탈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금의 외국인 매도세가 역대 최장 기간 순매도 행진을 기록했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 더 나을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과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연속 순매도 기록을 살펴보면 2005년과 2008년에 가장 오랜 기간 순매도세를 지속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 사태 바로 직전인 2008년 6월9일부터 7월23일까지 외국인은 총 33거래일간 매도공세를 이어갔으며 2005년 9월22일~10월26일에도 24거래일 연속 순매도 기록을 세웠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흥국 증시가 활황이던 2005년의 경우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졌고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똥이 국내 증시로 옮겨붙으면서 외국인 매도세가 거셌다"며 "현재의 증시 환경은 구조적으로 2008년과 유사해 보이지만 주가 수준이 해외 증시에 비해 낮지도 않은 데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은 금융위기 당시보다 나을 게 없다"고 진단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단기간 외국인 자금의 유출규모가 컸지만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대대적인 경기부양정책을 펼칠 만한 여력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듬해부터 가파른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통화정책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데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훼손되면서 외국인의 순매도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만간 또 한차례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물량이 쏟아져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흥국 위기가 아직 정점을 지나지 않은 만큼 본격적인 실적 시즌을 맞아 주요 기업의 어닝쇼크가 나올 경우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클라이맥스가 재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코스피지수가 1,800~1,850선 아래로 떨어질 경우 외국인 매도세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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