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난 60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러나 기적은 끝났다. '팬케이크'라 불릴 정도로 저성장은 고착화했다. 성장의 공식도 바뀌었다.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우는 '쉬운' 방법이 아니라 겹겹이 둘러싼 규제를 걷어내는 '어려운' 방법만 남았다. 국회를 압박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한국경제학회의 수장인 조장옥(63·사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조개혁은 뒷세대를 위해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근래에 박근혜 대통령이 푸시하는 것이 보기 싫을 수도 있지만 나는 잘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지금처럼 개혁을 밀어붙였다면 이미 성과가 일부 나타났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조 교수는 다만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더 기울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앞에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사안이 있을 때는 언론이나 국민들 앞에서 멋있게 설득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2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그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올해도 3%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의 발전단계를 이해하지 않아서 그렇다. 저성장은 당연히 오는 단계다. '경제발전의 기적'은 한국만의 역사가 아니다. 풍부한 노동에 따른 고속성장은 20~30년의 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장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국·대만은 26년, 일본은 20년 정도 지속됐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이탈리아는 20년보다 짧았다. 중국도 저성장 정상 상태로의 이행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은 1962년까지 정체됐던 성장률이 급등하더니 24년간 고도성장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2008년 2.5%선으로 내려앉았다. 2.5%가 낮다지만 100년을 지키면 굉장히 성공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기 부양이 아니라 '장기 관리'다.
-일본은 장기 관리에 실패한 것인가.
△일본은 1990년대에 구조개혁이 없었다. 그냥 재정지출이라고 해서 돈만 풀었고 정부 빚이 250%로 불었다. 그때 구조개혁을 했으면 지금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아베 신조 총리는 돈도 풀면서 구조개혁도 하겠다고 한다. 구조개혁이 잘 안 되고 있기는 하지만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다.
우리도 추가경정예산이나 편성하고 통화량이나 증가시켜 저성장을 빠져나온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년 전 높은 성장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한국 경제의 발전단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장기 관리를 못하면 10년 뒤 성장률이 더 내려갈 수 있다. 그건 견디기 힘들다.
-최근 중국도 경제성장률을 6%대로 낮추는데.
△중국도 저성장 초입에 들어섰다. 다시 중국이 10%로 부활하기는 불가능하다. 시진핑 주석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 주석과 그다음 주석은 무지하게 힘들 것이다. 20년 가까이 가면 (성장률이) 거의 아래로 내려올 것이다. 노동력이 풍부한 경제가 임금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하면 저성장으로 간다. 피할 수 없다. 고도성장만 하다가 갑자기 내려가면 국민들이 힘들다.
-우리나라는 장기 관리를 어떻게 하면 될까.
△4대 개혁, 특히 노동·교육개혁을 빨리해야 한다. 금융개혁은 별로 득이 없으리라 본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구조개혁을 하지 않은 게 너무나 아쉽다. 그랬다면 지금쯤 성과를 볼 수 있을 텐데. 2년을 허비했다. 첫 경제부총리를 잘못 임명해서 그렇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초대 경제수장을 맡았으면 좋았을 텐데. 박근혜 정부 인사의 실패라고 본다. 처음이라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노동개혁 방향은 잘 잡고 있는가.
△맞게 가고 있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한다. 해고가 빨리 되면 고용도 빨리 된다. 노조 가입률은 10%도 안 된다. 10% 가지고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는 건 위선이라고 본다. 자기들 밥그릇 싸움이 더 많다. 이상한 이념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의 생산성이 낮은데 법의 보호를 받다 보면 회사가 망한다. 노조가 진짜 잘되려면 스스로 생산성 증대운동에 나서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고 그것에 대해 임금을 더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업 규제개혁도 지적되는데.
△서비스업은 고용은 많은데 생산력은 낮다. 1998년 외환위기 전에는 서비스업 생산력이 더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지나면서 한계기업 정리 때 해고된 사람들이 다 서비스업으로 갔다. 일종의 하수구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게 뭔가 잘못된 것이다. 서비스업에는 교육·의료·법률 등 중요한 산업이 많다. 대통령이 서비스업 관련 법 통과를 강조하는 것이 틀린 게 아니다. 요즘 박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고 본다. 강하게, 임기 끝까지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으면 좋겠고 다음 대통령도 이어갔으면 좋겠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보나.
△가차 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성이 높은 새 기업이 나온다.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기는 것은 굉장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을 안 하는 게 원칙이다. 1990년 미국에서 걸프전쟁 직후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닫고 자동차 산업이 망한다고 난리가 났다. 이 때문에 아버지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80%에서 30%로 떨어져도 정부는 전혀 개입을 안 했다. 1~2년 지나 회복이 되더라.
-가계부채에 대한 걱정도 많다.
△연구들을 보면 악성부채는 아니다. 소비만 했다면 문제지만 자산을 불리는 데 썼다면 위험하지는 않다. 경고할 필요는 있지만 너무 떠드니까 사람들이 더 움츠린다. 위기가 오면 신용경색이 올 수 있으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겁줄 것까지는 없다.
-유일호 경제팀에 할 정책 조언은.
△개혁이다. 단기 변동에 집착하면 실패할 수 있다. 나는 장기 관리라고 부르는데 장기성장률을 관리해야 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기간은 30~40년이다. 이 기간은 한 단계 올라서는 데 분명 좋은 역할을 했지만 100년, 200년 뒤 한국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무리 없이 흘러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성장, 물론 하면 좋다. 하지만 괜히 재정적자만 늘릴 수 있다. 국가부채는 금방 늘어난다. 일본은 1990년대에 국가부채가 거의 없었다. 추경 10조원, 이런 것은 안 하는 게 낫다. 서민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지는 몰라도 효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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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임세원기자 why@sed.co.kr 사진=권욱기자
대담=이연선 경제부차장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