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진 전라북도 도지사는 이달 초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바이오 산업 투자가 가능하리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삼성이 새만금 지역에 풍력발전과 태양전지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현재 신재생 에너지 투자가 어려운 만큼 바이오로 방향을 바꿔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이제 막 송도에서 터를 잡고 시작한 바이오 사업을 다른 지역에서, 심지어 당장 추가 투자를 실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재계의 관계자는 10일 "사업계획으로만 보면 송도 외의 추가 투자는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총선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업들의 속앓이가 커지고 있다. 선거에서 표로 직결되는 선거구 내 기업 투자와 일자리 문제를 놓고 지자체와 정치권의 압력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지역에서는 "침체된 지역경제와 그동안의 기업과의 관계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글로벌 경제 흐름과 경영계획을 생각해야 하는 기업들은 대놓고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1위 삼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만금 지역뿐만 아니라 경북에서도 삼성에 추가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7일 삼성전자 임원진을 만나 "구미 5공단 하이테크밸리에 반도체 생산라인과 스마트카 생산기지를 조성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이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평택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데 구미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추가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경북도가 생각하는 생산시설 규모와 제품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삼성이 새 먹거리로 내세운 자동차 전장부품과 스마트카도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여러 요소를 점검해봐야 한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LG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북도는 20일께 LG전자 임원진을 초청해 추가 투자를 요청할 예정이다. 구미 지역의 경우 한때 LG디스플레이 직원 30%가 파주로 옮겨간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지자체가 긴장하고 있다. LG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지자체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크다.
현대자동차도 여러 지자체로부터 수소차 사업 구애를 받고 있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을 비롯해 광주광역시·충청남도 등이 '수소경제' 선점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수소차 생산시설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도 지자체로부터 수시로 공장 신설 요구를 받고 있다.
재계는 지역의 요구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삼성과 현대차·LG 등은 이미 글로벌 생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요구를 모른 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경기가 연초부터 불안한 것도 기업들이 추가 투자 논의를 꺼리는 이유다. 이미 주요 기업은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단체의 고위관계자는 "선거 때만 되면 기업들을 옥좨 표를 얻으려는 시도가 많아진다"며 "기업 총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지배구조처럼 풀어야 할 문제가 걸려 있는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을 태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기업 입장에서는 지역의 요구에 못한다고 바로 자를 수도 없어 난감하다"며 "투자라는 것은 생산성과 글로벌 수요, 규제 등을 모두 감안해 하는 것인데 답답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