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디자이너 SPA(제조·유통 일괄)브랜드로 북미 지역과 뉴욕 소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조프레시'는 지난 2014년 5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야심차게 론칭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5월 플래그십스토어인 명동점을 철수시켰다. 패션 브랜드 '클럽모나코' 의 창시자가 만든 브랜드로 화제를 모았지만 조만간 영등포 타임스퀘어점도 문들 닫는다. 미국 LA에서 3년 째 매출 4위를 달리고 있는 '포에버21'도 지난해 11월 말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를 접었다.
세계 시장에서 잘 나가는 글로벌 SPA들이 국내에서 죽을 쓰고 있다.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로 현지화가 미흡한 탓에 국내 트렌드와 맞지 않은 데다 최근 떠오른 한국의 '스몰엣지족'에게 이들 SPA 브랜드들이 가성비가 높지 않고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비싸 SPA의 장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라는 2013년 매출 성장세가 11.5%, 2014년 4.6%로 급감하더니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18억원에서 -80억원으로 뚝 떨어져 급기야 한국 진출 6년 만에 첫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1년과 2012년 69.4%, 42.4%의 높은 매출 성장률을 보이던 H&M 역시 2013년 들어서는 36.3%, 2014년 12.8%로 주춤하더니 영업이익이 같은 기간 62억원에서 34억원으로 반토막났다. 반면 자라의 모기업인 스페인 인디텍스와 H&M 모기업 에이치앤엠헤네스앤모리츠인터내셔널AB는 세계 SPA 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2012년까지 SPA 브랜드가 국내에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자 마시모두띠, 홀리스터, 아베크롬비, 버쉬카 등이 잇따라 한국에 상륙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지 못해 한국 안착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SPA 가운데 유니클로만이 유일하게 한국에서 승승장구중이다.
글로벌 SPA 브랜드가 예상을 깨고 유독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로는 우선 현지화 실패가 꼽힌다. 사이즈만 하더라도 한국 체형(xs, s, m, l)은 작은 데 반해 42, 44, 46처럼 상대적으로 크고 긴 유럽 여성의 사이즈와 동떨어진다. 깐깐한 한국 소비자는 SPA에서도 기능성과 품질을 선호하기 때문에 SPA 제품의 가성비가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 디자인 역시 유럽인에 맞춰져 있어 한국 정서에 맞지 않고 유럽처럼 지속적으로 추가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치지 않아 가격 메리트 또한 없다는 지적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유니클로를 제외한 다른 브랜드들이 디자인이나 가격 모두 차별화가 되지 않았다"며 "외국 브랜드는 수익성이 떨어지면 금새 접고 나가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정리 수순을 밟는 브랜드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함께 한국 SPA 브랜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PA는 물량, 입지 싸움인데 한국 시장 규모 자체가 대형 SPA 브랜드를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탑텐, 에잇세컨즈, 스파오 등과 같은 국내 SPA가 유니클로 등과 대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브랜드 선호도가 높은 편인데 반해 애국 마케팅을 구사해 온 탑텐은 마케팅이나 가격 정책, 높은 운영비 등에서 한계에 봉착해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벌써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SPA 브랜드는 단순히 브랜드가 아닌 유통망을 키우는 사업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고전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유니클로조차 한국서 성공하는데 10년이 걸린 만큼 삼성의 에잇세컨즈도 시간이 필요하고 생존을 위해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심희정·신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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