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세그웨이처럼 타고 다니다 '로봇' 모드를 선택하면 마치 애완동물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로봇이 된다. 주인이 장을 보고 나면 물건을 담아 집까지 나르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장에서는 적재적소로 부품을 빠르게 나르는 산업용 로봇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중국 로봇 업체 나인봇이 개발한 '세그웨이 로봇'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세계가전박람회(CES) 2016' 현장에서 나인봇 전시관은 세그웨이 로봇을 보려는 참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인봇은 샤오미가 투자한 로봇 개발 업체로 이번에 인텔과 협업해 세그웨이 로봇을 선보였다.
올해 CES에서 중국은 이미 전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드론뿐 아니라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로봇을 출품해 관람객들과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가전제품과 휴대폰 등에 이어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도 선진국 못지않은 기술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국의 '로봇 굴기(굴起)'는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2014년 6월 '세계 1위 로봇 강국으로의 도약'을 천명한 뒤 중국 정부는 로봇 집중 육성 계획을 세워 오는 2020년까지 세계 로봇 시장 점유율 4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지원을 늘리고 있다.
로봇 전문가들은 향후 세계 로봇 시장을 미국과 중국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과 큰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이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는데다 벤처기업 창업이 활발한 미국과 중국이 로봇 생태계를 틀어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국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에 로봇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첨단제조 파트너십'을 추진하면서 2013년에만 관련 분야에 22억달러를 투입할 정도로 로봇과 혁신적 제조공정 구축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 사격을 받으면서 미국과 중국 대기업들은 로봇 관련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구글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15개의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이들 기업이 개발한 센서 등 동작 관련 기술에 음성·이미지 인식 기반 감지 기술과 빅데이터를 접목할 경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AI 로봇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알리바바는 자회사의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의 물류 배송을 위해 드론을 활용하기로 한 데 이어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로봇 회사에도 투자했다.
AI 로봇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상용화 단계에서 주춤하고 있는 일본도 지난해 1월 아베 신조 정부가 '로봇 신전략'을 발표하고 로봇 분야에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로봇 예산(160억엔) 중 72%를 도입 실증, 시장화 기술 개발에 배정하는 등 상용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발맞춰 혼다·도요타·닛산 등 자동차 업체는 물론 소니·도시바·캐논·소프트뱅크 등 IT 기업들이 AI와 로봇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에 힘입어 국내 로봇 산업 규모가 생산액 기준으로 2009년 1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14년 2조6,000억원으로 성장했지만 로봇 기업의 93.4%가 중소기업이어서 투자 확대와 해외 진출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로봇 산업은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를 사업화로 연결해 시장을 조기 선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지난해 로봇 보급·확산 사업 예산은 전체 예산(1,605억원)의 10.4%(167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로봇 비즈니스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의 소셜 로봇 기업인 '지보'에 200억원을 투자했고 SK텔레콤은 KT의 교육용 로봇을 생산한 아이리버를 인수했다. 네이버도 지난해 9월 향후 5년간 로봇·무인자동차·스마트홈 등 미래성장 분야에 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밖에 한화테크윈과 현대로템 등은 의료 로봇과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강인구 퓨처로봇 해외사업부 이사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로봇 시장 규모나 개발 속도가 뒤처지기는 하지만 가정용이나 음식점 등 서비스업 중심의 특화 로봇을 중점적으로 개발해나간다면 해외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과 민간 업체의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한동훈·이종혁기자
도쿄=성행경기자 sain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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