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의 2대주주였던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자베즈파트너스가 최근 보유지분 전량(9.54%)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처분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베즈의 블록딜 매매가 임박한 시점에 현대증권의 공매도 물량이 평소보다 20배 가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 현대그룹과 자베즈의 계약에 따라 현대 측은 768억원을 손실보전금 명목으로 지분을 처분한 자베즈에 지급해야 해 가뜩이나 어려운 재무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자베즈는 지난 7일 장 마감 후 보유하던 현대증권 지분(2,257만7,400주)을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한다고 밝혔지만 이에 앞서 이날 장중 현대증권의 공매도 물량은 71만9,682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당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된 현대증권 주식 수(317만9,877주)의 22.63%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대증권 거래 주식 5주 중 1주는 공매도였다는 얘기다. 공매도는 기업의 주가 하락에 베팅한 기관투자가나 외국인이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주가가 더 떨어지면 주식을 매입해 빌린 주식을 갚고 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이다.
특히 당시 자베즈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수요 예측에서 통상 블록딜에 적용되는 할인율(5% 안팎)을 크게 웃도는 12.7%의 할인율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날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정보를 사전에 알고 공매도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7일 장 마감 후 블록딜로는 이례적인 10% 이상의 할인율이 적용됐다는 소식이 시장에 알려졌기 때문에 다음날 장 개시 후 주가 급락은 불 보듯 뻔했다"며 "이날 하루에만 공매도 물량이 평상시보다 2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공매도에 베팅한 기관들은 쏠쏠한 수익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베즈의 블록딜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8일 현대증권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7.19%(420원) 떨어진 5,420원으로 마감했고 그 뒤로 이틀 연속 더 하락했기 때문이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잘돼 있는 금융투자 회사는 블록딜 소식을 사전에 인지했더라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선행매매로 자본시장법을 위반할 우려 때문에 공매도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평상시 대비 공매도량이 폭증한 것은 분명한 만큼 불필요한 시장의 오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라도 조사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블록딜과 관련해 현대그룹(현대상선·현대유엔아이·현대엘리베이터)이 자베즈에 지급해야 할 총 손실부담액이 76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월 자베즈 측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9.54%를 기초자산으로 체결한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에 따르면 이들 계열사는 자베즈의 지분 매입가(주당 8,500원)를 기준으로 이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면 그에 따른 손실액을 자베즈에 지급해야 한다. 자베즈의 블록딜 가격이 주당 5,1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대그룹 측이 물어야 할 금액은 차액(3,400원)에 주식 수(2,257만7,400주)를 곱한 768억원이 된다. 절대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현재 취약한 현대그룹의 재무상황을 감안할 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민우·박준석기자 ingagh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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