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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래은행 요구하면 거절 못하죠" 중기 울며겨자먹기 퇴직연금 가입

"주거래은행에서 퇴직연금 상품 가입해달라고 요청해오면 가입하는 흉내라도 내야죠. 주거래은행만 3개나 되다 보니 증권사나 보험사 퇴직연금 상품은 가입할 엄두를 못내겠네요."(중소기업 A사 경영전략본부 팀장)

14일 중기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가 모두 판매하고 있는 퇴직연금상품 시장에서 주거래은행의 입김이 세지면서 가입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받고 있다. 금융권별로 판매하는 상품군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회사와 금융사의 기존 거래 관계가 근로자의 퇴직연금상품 가입의 선택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근로자가 노후를 위해 준비할 자산을 운용하는데 가장 적합한 투자 조언을 받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최근 퇴직연금제도 도입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 기업의 절반(51.7%) 이상이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할 때 '기존 거래관계'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고 '매우 영향을 받았다'는 비중은 은행(20%)이 다른 업권에 비해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거래 관계는 은행의 경우 대출 관계, 증권업은 주식이나 채권인수 등 투자 관계, 보험사는 기존 퇴직보험 거래 관계 등을 의미한다. 또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은행을 사업자로 선정하는 비중이 높았다. 기업 규모가 30~50인의 경우 은행을 퇴직연금사업자로 선정한 비중은 92.2%에 달했으며 50~100인은 87.4%, 100~200인은 83.6%, 200~300인은 85.5%를 기록했다. 김혜령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무래도 은행은 안정적인 퇴직연금 상품에 강점이 있고 증권사는 투자 상품에 강점이 있는 상황에서 기존 거래관계가 퇴직연금 상품 가입에 영향을 미친다면 근로자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운용 방식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퇴직연금 종합안내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까지 14개 은행의 평균 수익률은 확정급여(DB)형이 0.59%, 확정기여(DC)형이 0.58%를 기록해 18개 증권사의 평균 수익률(DB형 0.65%, DC형 0.62%)을 밑돌았다. 비원리금비보장상품의 경우 은행은 -1.74%(DB형), -1.59%(DC형)를, 증권사는 -1.62%(DB형), -1.78%(DC형)를 기록해 판매 업권별로 수익률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해만 보면 작은 차이로 보이지만 퇴직할 때까지 장기로 운용된다는 측면에서 연금을 받을 시점에는 큰 수익률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주거래은행이 상품 가입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금리 혜택 특별한 이익 등을 주고 있어 주거래은행과의 금융상품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 한 벤처기업의 대표는 지난 11월에 주거래 은행에서 퇴직연금상품 가입을 권유받고 해당 은행의 퇴직연금상품에 가입했다. 이 대표는 "차입이 많은 상황에서 금리를 조금이라도 할인받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상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금융상품을 주거래 은행이나 해당 금융사 계열사를 통해 가입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에는 대출을 받은 이후 한 달간은 해당 금융사의 금융상품을 가입할 수 없게 막아놨지만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위해 그 이후에 요구하는 금융상품은 웬만하면 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의 인사팀 관계자 역시 "주거래은행에서 퇴직연금상품 가입을 요청하면 금리 인하나 대출 연장에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전했다.

금융위원회 퇴직연금 감독 규정에 따르면 기존 대출을 해주는 대신 계약 체결을 요구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금리인하 등 3만원 이상의 특별이익을 제공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 금리인하와 퇴직연금 계약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가 어려워 현실에서는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금융권의 한 퇴직연금운용부서 관계자는 "은행이 퇴직연금을 가입하는 것을 전제로 대출 금리를 인하해 준 것을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퇴직연금 감독규정 제16조의 특별한 이익 부분은 현실에서는 사문화된 규정"이라고 꼬집었다. /강광우기자 press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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