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미국 등 서방 제재가 해제됨에 따라 '제2의 중동 붐'을 만들기 위한 우리 정부 및 국내 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당장 정유·석유화학·조선·해운·자동차 등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한 교역 제한이 풀려 우리 기업의 인프라 사업 수주 및 수출 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연간 4,600만배럴로 묶여 있던 이란 원유수입 쿼터도 풀린다. 정부는 이란 시장 공략을 위해 오는 2월 말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고 이에 맞춰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파견할 계획이다.
다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거래에 미국 달러화 결제와 송금은 허용되지 않아 완화 결제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란이 핵 개발 중단 약속을 어기면 언제든 제재 복귀(스냅백)가 가능하다"며 "우리 기업은 이란과 계약을 체결할 때 '국제사회의 제재가 재개되면 배상금 없이 계약이 자동 해지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비상대응책을 염두에 두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대이란 교역 금지 내용을 규정한 '이란 교역 및 투자 가이드라인'을 17일부터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핵 등 대량살상무기 등과 관련된 전략물자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는 경우에 한해 수출할 수 있고 이외에 거의 모든 제품은 수출입 제한이 해제된다. 자동차만 해도 지난 2014년부터 수출이 가능했지만 현지지사 설립 및 영업활동은 금지돼 수출 확대가 어려웠다. 현지 소비심리 개선으로 우리의 냉장고·TV 등 소비재 수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이란 수출이 38억달러로 전년 대비 8%가량 줄었는데 올해는 과거 최고였던 2012년의 63억달러까지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회간접자본(SOC)·건설·조선 등에서 대규모 수주도 예상된다. 이란은 가스매장량이 세계 1위, 원유매장량이 4위지만 기반시설이 상당히 낙후돼 있다. 이란은 앞으로 1,300억~1,450억달러를 투자해 원유시설 등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우리 건설사는 이란에서 평판이 좋았고 기술력도 높기 때문에 수주경쟁력이 있다"며 "재진출의 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란에서 활발한 공사를 해왔던 대림산업·현대건설 등은 이번 제재 해제를 계기로 신규 수주 참가 가능성을 적극 타진하기로 했다. 상당수 국내 건설사들은 테헤란 등에 있는 지사를 철수하지 않고 필요인력을 운영해왔다.
이란 원유수입도 늘 것으로 보인다. 2011년만 해도 8,700만배럴이 수입됐던 이란 원유는 2014년부터는 절반 수준인 4,600만배럴까지 떨어진 상태. 앞으로는 국내 정유사들이 수요에 맞춰 이란 원유수입이 자유로워져 원유수입 다변화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해운 업계도 교역활성화에 따른 특수를 누릴 수 있다. 항공의 경우 제재 이전에는 이란항공이 정기 노선을 운항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단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여객기를 띄울 만큼 수요가 확보되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한진해운이 3년 만에 이란 반다라바스항 기항을 시작한 해운 업계도 물동량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는 2010년 이후 국내에서 영업을 중단한 이란 멜라트은행이 정상 영업을 조만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각 분야에서 이란과의 교역이 크게 늘어날 것에 대비해 2006년 폐지됐던 장관급 경제협력 채널인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를 부활시킨다. 정부는 또 금융거래에 달러화 결제 및 송금은 계속 유지됨에 따라 미국·이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유로화 등 다른 국제통화를 활용할 수 있는 결제체제를 조속히 구축해 이란과의 교역·투자 정상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세종=이상훈·이태규기자 s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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