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공 업계가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우리 조종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저비용항공사(LCC)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장급 숙련 조종사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본격적인 인력 '빼가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국적항공사의 조종사 노동조합이 임금협상 등을 둘러싸고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어 인력 누출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숙련 조종사들의 대거 이탈이 이어질 경우 항공기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7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50여명의 조종사가 중국 항공사로 이직했다.
국내 조종사의 중국 항공사 이직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됐으나 최근 속도가 빨라졌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지난해 15명가량이 중국 등 해외 항공사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중국 항공사들은 한국 조종사 인력을 대상으로 최대 두 배에 이르는 연봉을 지급하며 이직을 권유하고 있다.
최근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스카우팅에 나선 중국 A항공이 기장급 숙련 조종사에게 제시한 근무조건을 보면 최대 28만8,000달러(약 3억5,000만원)의 연봉과 별도 보너스를 약속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오름세를 타고 있어(원화 값 하락) 원화로 환산한 '체감 연봉'은 더욱 커지는 것도 매력적인 측면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규직이 아니고 3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불안정한 측면이 있고 사내 복지도 국적 항공에 미치지 못하지만 연봉을 워낙 높게 제시하다 보니 흔들리는 조종사들이 적지 않다"며 "고 설명했다.
최근 국적 항공 조종사들이 처우에 불만을 갖는 것도 이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최근 임금협상 교섭 결렬을 선언한 뒤 파업 수순을 밟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 또한 임금 동결에 동의했던 잠정합의안을 뒤집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항공사들은 최근 저비용항공사(LCC)와의 무한 경쟁 등에 따라 좌석당 운임이 낮아지는 등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큰 폭의 임금 인상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희망퇴직, 일부 노선 폐쇄 등의 내용을 담은 고강도 자구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항공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우리 회사의 본원적 경쟁력 저하에 따라 위기를 맞이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역 없는 고강도 구조개선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역시 지난해 글로벌 저유가에 따라 영업익이 상승하는 등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이뤘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입장이다. 특히 외화 부채가 많은 항공사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이자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결코 만만찮은 상황이라는 위기 섞인 진단이 나온다. 우리 조종사들의 중국행(行)이 현실화하면서 항공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숙련 조종사의 자리를 상대적으로 비행경력이 짧은 인력이 대체할 경우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지만 항공기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만큼 업계 스스로 대비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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