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날 오후 서초구 양재동 블랙야크 사옥 1~2층에 있는 직영매장. 블랙야크, 블랙야크 키즈, 마모트, 마운티아 등 4개 브랜드 신상품들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초대형 매장이지만 방문객이 없어 썰렁하다 못해 단순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발열재킷 ‘야크온H’를 직원에게 문의해도 신기술에 대한 설명없이 30% 할인이 가능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2층 블랙야크 매장 절반 가량은 이월상품으로 가득했다. 매장 직원은 “사실 이월상품과 신상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고성장을 거듭해온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가 세일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불황과 따뜻한 겨울이라는 난관에 더해 부정확한 수요예측에 따른 악성재고와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마케팅 전략 등이 겹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는 분석이다.
18일 A아웃렛에 따르면 블랙야크의 이월상품 할인율은 30~70%대로, 통상 30% 안팎에서 진행되는 상위권 업체들의 할인폭을 훌쩍 웃돈다. 가격을 많이 내리면 매상은 반짝 올라가겠지만 정상가에 대한 신뢰와 브랜드 가치가 동반 추락해 브랜드들은 웬만하면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가격 정책을 펼치는 편이다.
그러나 블랙야크는 정가가 민망할 정도로 가격을 깎아 팔고 있다. 지난해 7월 소비자 반응을 살피기 위해 선판매용으로 선보인 ‘B제우스다운재킷’은 가산동 B아웃렛에서 60% 할인된 19만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2014년 7월에 출시한 ‘C울트라 다운재킷’ 역시 58% 인하된 17만5,000원에 거래됐다. 블랙야크의 기술력을 집약했다는 스마트웨어 ‘야크온H’도 전문가용은 정상가가 68만9,000원이었지만 공식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는 48만원에 판다. 58만원이었던 일반용은 40만6,000원까지 내려왔다. 스마트웨어 시장을 선도하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야크온 가격정책이 이 정도임을 감안하면 블랙야크 전반의 마케팅 전략이 허탕을 쳤다는 얘기다.
온라인쇼핑몰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4년 주력상품이었던 ‘레오파드재킷’은 61% 낮춘 19만3,000원에, 여성 롱다운재킷 ‘P5XM3’은 55% 할인한 39만원에 팔리고 있다. ‘1년 살이’ 제품의 가격이 뚝뚝 떨어지다 보니 몇 년 지난 제품은 거의 땡처리 수준에 처분된다. 2011년 출시된 프리미엄 제품 ‘B1XE2’은 고가의 고어텍스를 적용해 무려 110만원에 나왔지만 지금은 22만원에 팔린다. 할인율이 무려 80%에 달한다.
이런 탓에 소비자들 사이에선 “블랙야크 제품을 정상가에 살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가산동 B아웃렛에서 만난 한 40대 소비자는 “며칠 전 중학생 아들과 백화점에 들렀을 때 블랙야크 패딩을 안 사서 다행이었다”며 “신상품이나 다름없는 것도 이렇게 싸게 살 수 있는데 라벨에 붙은 가격에 사면 억울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상가 정책이 무너진 것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리테일 시장만이 아니다. 소방공무원이나 경찰관 등 관공서에 넣는 관급시장 입찰에서 블랙야크가 시즌 주력인 신제품을 반값도 안되게 써내 동종업계로부터 “감내하기 어려운 출혈 경쟁”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통상 적용되는 할인율과 업계 관행을 무시하고 파격적인 가격을 적은 데는 ‘일단 따놓고 보자’는 급한 마음이 컸다고 업계는 꼬집었다.
아웃도어 관계자들은 지나친 세일 정책을 펼치고 있는 블랙야크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가에 팔리는 신상품을 외면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브랜드 가치도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웃도어뿐 아니라 어느 패션 브랜드도 공들인 제품을 브랜드 가치를 망치면서까지 헐값에 팔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블랙야크의 비상식적인 할인정책은 그만큼 재고 처분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이수민 ·신희철기자 noenem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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