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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로봇 시대의 구조조정 1순위가 되게 생겼습니다."
지난 14일 국내 한 핀테크 기업이 프라이빗뱅커(PB)를 대상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설명회를 연 자리에서 이 같은 '농담 반 진담 반' 푸념이 PB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경력 17년차인 한 PB는 "(로봇이)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위협적"이라며 "자산관리 서비스에 로봇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핀테크 열기 속에 인터넷은행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 독립자문업자(IFA) 도입 추진 등 금융당국의 자산관리 서비스 확대 움직임도 로보어드바이저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새해 업무보고에서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등으로 금융상품 자문업을 활성화해 국민의 재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비대면 온라인 계약을 허용하고 전문 자문인력의 범위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자문과 판매가 결합된 원스톱 자산관리 플랫폼도 도입될 예정이다. 아울러 투자상품 설계 및 판매사와 거리를 두고 중립적 위치에서 소비자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IFA 제도도 도입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ISA와 로보어드바이저 등 일련의 정책들은 고액자산가뿐 아니라 일반 금융소비자가 직접 자산관리에 나설 수 있는 플랫폼을 확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가 정착되면 독립 PB 한 명이 복수의 투자자들에게 국내외 금융상품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비대면 온라인으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증권사 지점을 통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카카오가 핀테크 업체 두나무와 함께 출시한 모바일 자산관리 플랫폼인 맵(MAP·Managed Account by Professional)이 대표적이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증권사 계좌를 열고 투자성향에 맞는 자문사와 포트폴리오를 확인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PB도 필요 없고 금융회사의 손을 거칠 필요도 없다. 은행 대출도 스마트폰으로 가능해 지점을 찾을 이유는 더욱 없다.
은행과 증권사의 오프라인 지점망은 이에 따라 점점 감소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KB국민은행 등 은행권을 포함해 증권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점 감축에 돌입했다. 영국계 은행 HSBC는 지난해에만도 약 2만5,000여 명, 스탠다드차타드는 1만5,000여명의 인력을 각각 줄였다.
국내 은행의 디지털뱅킹 담당 임원은 "10년 안에 금융 관련 직군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며 "금융에 우버모멘트(Uber moment)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과 기업의 등장으로 기존 산업체제가 완전히 바뀌고 위협받는 순간을 지칭하는 우버모멘트가 금융당국의 제도적 뒷받침까지 더해지면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승종 쿼터백테크놀로지 대표는 "독립 PB가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해 고객 자산관리를 하게 되면 기존의 소속 금융회사 중심의 상품 포트폴리오를 벗어나게 된다"며 "강력한 경쟁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봇 시대의 위기 속에 금융투자 업계는 새로운 기회가 부상할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김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는 금융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기존 금융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강조했다. 오인대 대우증권 스마트금융파트장도 "로봇의 힘을 빌려 금융회사의 자산관리 서비스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기존 금융이 없어진다기보다 로보어드바이저에 특화된 신산업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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