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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배럴당 30달러선이 붕괴된 지난해 12월. 중국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화학집단(시노펙)은 남중국해 시사(西沙)군도 일원에 석유비축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곳에 비축기지를 지어 실효지배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싼 유가를 이용해 비축유를 늘리려는 이중포석이었다.
실제 중국은 저유가를 활용한 비축유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100달러에서 50달러대로 급락하자 서둘러 1억배럴을 비축해 현재 2억배럴의 전략비축유를 확보했다. 중국은 오는 2020년 5억배럴까지 비축유를 늘릴 방침이다.
하지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중국의 비축전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물값과 우윳값보다 싸고 비축기지 36%가 비었는데도 추가 비축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축정책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유가가 쌀 때 비축량을 늘리는 게 국익에 보탬이 되지만 국제 수준을 훨씬 웃도는 비축량을 확보한데다 저장에 따른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 9곳에서 확보한 비축유는 지난해 말 9,260만배럴에 이른다. 이는 원유수입 없이 138일을 버틸 수 있는 물량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치 90일분을 능가한다. 97일분을 보유한 일본은 물론 프랑스(77일), 미국(132일)보다 많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규 확보분을 점차 축소하는 추세다. 정부의 비축유 신규 확보량은 지난 2011년 60만배럴이었지만 △2012년 44만8,000배럴 △2013년 26만3,000배럴 △2014년 27만2,000배럴 △2015년 21만9,000배럴 등으로 줄었다.
문제는 과거에 수립된 10년 단위 비축유 확보계획에 얽매이다 보니 저유가 기조에 탄력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가가 비쌀 때 비축유를 더 사들이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유가 흐름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비축유 확보계획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4차 석유비축계획(2015~2025)이 수립된 2013~2014년만 해도 유가는 배럴당 80달러를 웃돌았다. 한 정부 출연기관 연구위원은 "비축유의 경제적 활용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저유가 시기에 비축유를 더 많이 구매하는 등 유가 움직임에 따라 비축유 구매량을 탄력적으로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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