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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002년 이후 13년 동안 한 해에 쓸 예산의 절반 이상을 상반기에 쏟아붓는 재정 조기집행을 단행했지만 연간 성장률 제고 효과는 단 세 번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연초 당겨쓰기와 연말 재정절벽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안정적인 경기 사이클을 조성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한 재정 조기집행 카드가 '썩은 도낏자루'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재정 조기집행으로 정부 성장률 전망치보다 실적치가 높았던 때는 2006년, 2007년, 2010년 등 세 차례에 그쳤다. 이 기간 정부 전망치와 실질성장률은 각각 △2006년 5%, 5.2% △2007년 4.6%, 5.5% △2010년 5%, 6.5%이었다.
정부는 올해도 중국 경기 경착륙과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금융위기 우려 등 대내외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전체 재정의 58%를 상반기에 쏟아붓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소비진작책(특별소비세 인하)의 효과가 소멸되면서 나타날 '소비절벽'을 의식한 듯 올해 1·4분기에 전년보다 8조원 더 많은 125조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 참석한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1·4분기의 총력 재정 조기집행을 장관들이 직접 챙겨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그동안 결과에서 보듯이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 같은 지적은 정부 내부에서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민간 등 경제 주체들에게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며 "다만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따로 돈을 푸는 것보다는 성장률 제고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재정 조기집행의 효과가 신통찮은 것은 정부지출의 경제성장률(GDP) 기여도를 봐도 드러난다. 조기 재정투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기는커녕 되레 성장률을 갉아먹기도 했다. 정부지출의 성장률 기여도는 △2011년 2·4분기 -0.1%포인트 △2012년 2·4분기 -0.2%포인트 △2013년 1·4분기 -0.1%포인트 △2014년 1·4분기 -0.4%포인트 △2015년 1·4분기 -0.3%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재정집행의 무게중심이 숫자에만 쏠려 있는 탓에 적재적소에 쓰이는지에 대한 사후 관리감독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재정집행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정부는 2002년부터 경기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정 조기집행을 중심으로 재정관리를 추진해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관리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한 후 하반기에 쓸 여력이 없으면 경기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일반적으로 '상고하저'의 경기 패턴이 나타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반기에는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보고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데 오히려 하반기에 쓸 자금이 부족해 경기의 선순환을 방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14년 4·4분기에도 연말 재정절벽에 부닥쳐 0.3%의 성장률 쇼크를 경험한 바 있다. 또 정부는 지난해 12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해 5분기 연속 0%대 저성장 흐름을 끊어냈다고 자평했지만 부양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날 발표된 지난해 4·4분기 경제성장률은 0.6%로 경기부양 역량이 집중된 3·4분기 성장률(1.3%)에 비해 반 토막 났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매년 상반기에 돈을 풀고 하반기에 투입되는 돈이 줄어들게 되면 연간 성장률에는 거의 영향을 못 미친다"며 "재정 조기집행보다는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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