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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통·방송시장 5년동안 300조원 가까이 급성장
美 T모바일 인수전·차터-타임워너 M&A 협상 활발
유럽선 英 보다폰·獨 카벨 합병 등 국경·업종도 무너져
국내시장 포화 상태… 이종·동종 업체간 결합 전략을
대한민국의 방송통신 업계가 '성장 절벽' 앞에 섰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이 이달 들어 국내 통신산업의 실적 보고서를 낸 5개 증권사(동부·IBK·유진·KB·하나)의 분석을 종합한 결과 지난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총매출은 전년 대비 약 3.9%(2조3,000억원) 하락한 49조5,647억원으로 추계돼 사상 처음 2년 연속 뒷걸음질쳤다. 올해는 매출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폭은 2.2%에 불과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던 지난 2008년(2.7%)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3사의 합산영업이익 역시 지난해와 올해 각각 3조원대로 추산돼 5조원대에 달했던 10년 전에도 한참 못 미친다. 정승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휴대폰 보급률이 114%에 달할 정도로 포화상태인데 마케팅 비용 부담은 줄지 않고 있다"며 "통신업계가 성장둔화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료방송 업계 역시 현상유지조차 버겁다. 한국투자증권은 CJ헬로비전(케이블TV 1위)과 현대HCN(〃5위), 430만여명(위성방송·인터넷TV 합산)의 가입자를 둔 KT스카이라이프 등 3대 주요 유료방송사의 합산매출이 지난해 전년 대비 3.6% 하락한 2조1,490억원에 그친 것으로 추산했다. 한 대형 이통사 임원은 "매출은 정체상태인데 주파수 경매, 5세대(5G) 통신기술 개발 등으로 대규모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며 "올해부터 2~3년간이 성장정체냐 재도약이냐를 가를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걸음 쳐온 국내 미디어 시장과 달리 세계 시장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해 전 세계 이동통신 시장(매출 기준)과 방송 시장(소비자·광고지출 기준) 규모는 5년 전보다 각각 약 188조원, 109조원씩 늘어 총 300조원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우선 통계 전문 온라인사이트인 스테이티스타에 따르면 지구촌 이통 업계 총매출은 지난 2012년 약 1,318조원(1조940억유로)을 기록한 후 매년 성장해 올해 1,507조2,000억원(1조2,510유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맥킨지앤컴퍼니는 방송 시장도 계속 덩치가 커져 2012년 609조원대(4,664억1,100만달러)이던 것이 올해 거의 18%(약 109조원) 늘어난 718조원대(5,502억9,2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 방송통신 기업들은 시장 포화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종, 동종 업체 간 인수합병(M&A)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 성장의 길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에도 벽두부터 미국에서는 초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서로 사고 합치는 메가딜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현지 4대 이동통신 업체인 T모바일을 놓고 컴캐스트나 미국 2위 케이블TV 업체인 차터커뮤니케이션스가 잠재적 인수후보로 떠오르고 있다는 전망이 관련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차터커뮤니케이션스와 경쟁업체 타임워너케이블 인수협상이 표면화된 지 1년여 만인 올해 중반 무렵에 결론 날 것으로 본다.
미디어 공룡 간 결합은 업종·국경마저 허물고 있다. 유럽에서는 영국 이통사 보다폰이 약 77억유로에 독일 최대 케이블TV 업체 카벨도이칠란트 등을 합병했고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도 약 80억유로를 들여 네덜란드 이통사 KPN의 독일법인인 E-플러스를 사들였다. 아시아에서는 재일교포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이미 미국 3위 이통사 스프린트를 인수한 상태다. 손 회장의 스프린트는 지난해 T모바일을 품으려다가 당국의 인가를 얻지 못해 실패했는데 올해 재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 최근 영미계 증시분석기관인 버나드리서치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통신 업계는 내수시장에서 가입자 수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방송 업계에 따르면 유료방송사업 가입자만 해도 지난해 9월 현재 이미 2,852만여명에 달해 약 2,101만여가구(행정자치부 기준)인 전국 가구 수를 넘어섰다.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도 지난해 5,800만명을 넘어서 1인당 1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 됐다. 이광훈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방송통신 시장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시장으로 가고 있다"며 "시장의 변화를 촉발하는 구조개편 등이 효과적이며 해외에서는 당국이 대규모 M&A에 대해 적절한 세이프가드(단서조항) 아래에서 전향적으로 인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2014년 미국에서 이통사인 스프린트·T모바일 간 결합과 2015년 컴캐스트·타임워너케이블 간 결합 등이 불허된 사례를 들어 독과점 폐해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미디어 기업 간 M&A에 대해 "인수인가 심사 과정에서 이동지배력을 해소하는 방안 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미국에서는 1~3년마다 최소 한 번씩의 초대형 미디어 기업 간 결합이 이어졌다. 특히 2000년 AT&T는 당시 4위 케이블TV 업체였던 미디어원을 인수해 60%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려 했는데 당국의 인가를 받았다. 당시 AT&T는 이미 2년 전 미국 1위 케이블TV 사업자인 TCI를 인수한 상태였지만 당국은 추가적인 메가딜을 인정해준 것이다.
이 밖에도 △AOL+타임워너(2001년) △컴캐스트+AT&T(2003년) △SBC+AT&T(2005년) △컴캐스트·타임워너+아델피아 케이블방송(2006년)△컴캐스트+NBC유니버설(2011) △일본 소프트뱅크+미국 스프린트(2012년) △미국 AT&T+미국 다이렉트TV M&A(2015년) 등이 미국에서 인가를 얻은 대표적 메가딜로 꼽힌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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