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여년간 서구 열강의 독무대와 다름없었던 우주 탐사 경쟁에 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의 도전이 거세다. 이들의 첫 격전지는 달이다. 지구에서 가까워 탐사기술을 연마할 최적의 행성이자 우주 탐사의 중간 기착지로서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세계 7대 항공우주산업 강국 도약을 천명한 우리나라도 오는 2020년 달 표면에 태극기를 꽂기 위해 달 탐사 엔진 점화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0원에서 200억원으로
2014년 12월 항공우주공학계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2017년 시험용 달 궤도선, 2020년 달 착륙선의 독자 발사를 골자로 한 한국형 달 탐사 프로그램 추진을 위한 2015년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 2일 2016년도 정부예산이 확정될 때 분위기는 달랐다. 당초 정부안보다 100억원 증액된 200억원의 예산이 확정 돼 달 탐사 꿈을 현실화할 토대가 마련돼서다.
올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한 15개 정부출연연구원들은 자체 사업예산 약 59억원을 투입해 기반연구를 지속하면서 국가우주위원회가 올 초 결정한 수정 로드맵의 일정 준수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수정 로드맵에 의하면 궤도선 발사는 2018년으로 1년 순연됐지만 착륙선 발사 시점에는 변동이 없다.
최기혁 항우연 달 탐사연구단장은 “올 1년의 기반연구를 통해 탐사선 본체의 기본설계와 궤도선의 형상·중량·제원 검증에 필요한 시뮬레이터 개발을 완료하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며 “올해가 일종의 미봉책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체계적인 연구개발을 본격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 달 탐사예산 중 궤도선의 예비설계에 약 1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또 발사체 계약과 추진 시스템 및 부품 국산화에 각각 50억원이 사용된다.
최 단장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수정 로드맵 이행에는 문제가 없다”며 “오는 2020년 독자 개발한 달 궤도선과 착륙선을 실은 한국형발사체(KSLV-Ⅱ)가 나로우주기지에서 불을 뿜으면서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 탐사 기본 역량 확보
한국형 달 탐사 프로그램은 크게 2단계로 추진된다. 1단계는 2018년까지 심우주 통신용 지상국을 구축하고, 시험용 궤도선을 제작·발사하는 것이 목표다. 이 궤도선은 달의 100㎞ 상공을 회전하면서 정밀영상을 촬영, 지형 분석과 착륙선의 착륙후보지 조사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를 위해 한국천문연구원·한국전자통신 연구원 등이 고해상도 광학망원경을 포함한 과학 탑재체와 우주인터넷 탑재체를 개발 중이다. 항우연은 1단계 시험용 궤도선 개발에 약 1,978억원의 연구개발비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단계로는 2020년까지 궤도선과 착륙선 개발을 마치고 KSLV-Ⅱ에 실어 자력 발사할 계획이다. 착륙선이 달 표면 안착에 성공하면 지질과 열유량 조사, 지진계를 이용한 내부구조분석 등의 임무가 부여된다. 이렇게 2단계까지 성공했을 경우 착륙선 또는 탐사로버가 채집 한 달의 암석이나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와 직접 연구·분석하는 것이 달 탐사의 궁극적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최 단장은 “우리나라는 저궤도·정지궤도 위성의 개발과 운영 경험에 힘입어 달 탐사의 기본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약 30%의 미확보 기술 가운데 추진 시스템은 해외 산업체, 심우주 항법은 미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국내 주도로 개발해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항우연은 이미 지난해 4월 NASA와 심우주 항법 및 심우주 통신용 지상국에 관한 상호 기술지원협약(TTA)을 체결하고 5월에는 무인 달 탐사 협력의향서를 교환한 상태다.
기술적·산업적 파급력 무궁무진
사실 우리나라의 달 탐사 도전은 아시아권 경쟁국과 비교해도 후발주자에 속한다. 예컨대 일본은 일찌감치 지난 2007년 달 탐사위성 ‘셀레네(가구야)’를 발사했고, 이듬해에는 인도가 달 궤도선 ‘찬드라얀 1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인도는 지난 2013년 발사한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이 지난해 화성궤도 진입하며 역대 4번째 화성 탐사국 지위까지 얻었다. 중국 역시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의 달 궤도선 발사에 이어 2013년 12월 ‘창어3호’를 통해 착륙선 ‘위투(玉兎)’를 월면 위에 올려놓으며 달 착륙에 성공한 3번째 국가가 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형 달 탐사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진행해 이들 3개국과의 기술격차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격차가 더 심화되면 자칫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우주강국과의 국제협력 기회마저 잃어버려 우주탐사라는 무대에서 완전히 도태될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달 탐사의 성공은 심우주 탐사의 전진 기지이자 우주탐사기술 검증의 테스트베드라는 기술적 가치 외에도 막대한 경제적·산업적 파급력을 발휘한다.
이경태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은 “국가브랜드 제고라는 단기적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인공위성 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수출시장 확대와 우주발사체 시장 진출 등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메리트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최 단장은 달의 자원에도 주목하고 있다. 달은 희토류와 헬륨3 같은 고부가가치 자원의 보고인 만큼 달 탐사는 곧 우리나라가 미래 우주 자원개발 경쟁의 주도국으로 나아가는 첩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달 탐사 등 국내 우주탐사 프로그램이 결실을 맺으려면 산학연협력 네트워크의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피력한다. 우주항공 분야가 가진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동안 많은 선제적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 탓에 융합연구의 토대 역시 취약하기 때문이다.
최 단장은 “국내 연구역량을 총 집결한 융합연구를 수행하고자 탐사선, 탑재체, 심우주지상국, 로버 등의 분과별로 매월 관련연구기관들이 점검회의를 실시하고 있다”며 “달 탐사가 성공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동안 학계와 산업계의 체질 강화 및 유기적 네트워킹에도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INTERVIEW] “달탐사 성공 위해 산학연·국제협력 필수”
피차이 마니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부소장
최근 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제2차 달 탐사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인도는 지난 2008년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1호’ 발사를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오는 2018년 ‘찬드라얀 2호’의 발사를 준비하는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피차이 마니 부소장에게 한국형 달 탐사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인도가 저비용으로 효율적 우주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비결은
인도는 50여년의 우주 개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위성과 로켓 기술은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다고 본다. 원천기술 확보나 노하우 등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달 궤도선과 화성 탐사선 임무를 거치면서 심우주 탐사 기술도 다수 축적됐다고 자부한다.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부품 국산화가 이뤄졌고 우주항공 연구자와 엔지니어링 전문인력도 많아 여타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우주개발이 가능하다.
인도가 우주개발에 힘쓰고 있는 이유는
인도는 고대부터 천문학이 발달했다. 그만큼 천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또 넓은 국토의 효율적 관측을 위해 지리학적 저궤도 위성이나 해양 관측 및 통신을 위한 정지궤도 위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우주개발에 나서는 이유는 첫째로 우주탐사가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지구 밖의 다른 행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기회이자 자극이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달 탐사, 화성 탐사와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그만큼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 수준도 향상된다. 마지막은 경제적 측면이다. 우주여행과 외계행성 식민지 건설, 우주 광물 채취 등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산학연 협력은 잘 이뤄지고 있나
그렇다고 자평한다. 인도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인도 내의 다양한 산업 분야와 연관돼 있고 많은 기업들이 가시적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예로 우주발사체 PSLV의 경우 80% 이상의 부품이 국산화됐다. 인공위성 부품의 국산화율도 60~70% 수준이다. 특히 달 궤도선과 화성탐사선 발사 성공 이후 해외로부터 위성 약 30기의 발사 계약을 수주하는 등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다.
다음 달탐사 계획에 대해 귀띔해준다면
찬드라얀 2호 발사 프로그램에는 달 궤도선과 착륙선, 그리고 6개의 바퀴가 달린 달 탐사 로버가 포함돼 있다. 궤도선은 착륙선을 분리한 후 약 1년간 탐사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착륙선은 약 14일 동안 달 표면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된다.
한국에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도 달 궤도선과 탐사선·로버를 포함한 달 탐사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거대 프로젝트 진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인도가 달 탐사를 처음 추진했을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 해외 우주 개발 기관과 적극 협력했다. 달 탐사의 성공률 제고를 위해 국제협력은 필수다.
달 탐사선 주요 임무
궤도선
● 2차원 및 3차원 달 지형 지도 제작
● 달 광물자원 지도 제작
● 달 표면 성분 및 토양 깊이 추정
● 달 지형분석 (착륙선 착륙후보지 자료 수집)
● 달 자기장 및 중력 분포 측정
● 우주환경감시
● 달 주변 먼지 및 대기환경 측정
착륙선
● 달 토양 샘플 채취 (지질학적, 광물학적, 화학적 성분 및 강도 분석)
● 달 표면의 열적 및 방사선 환경 측정
● 유인 달 탐사 및 화성 탐사에 대비한 착륙기술 검증
● 물 존재 확인
● 달 지진파 탐지를 통한 내부구조 분석
● 달 표면영상 실시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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