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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의 대표적인 '반도체 통'이다. 지난 1985년 삼성반도체연구소에 몸을 담은 뒤 글로벌 반도체 초일류 기업을 키우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다. 삼성이 자랑하는 '패스트 팔로어(추격자)' 전략의 산증인인 셈이다.
이런 권오현 부회장이 변신을 선언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퍼스트무버(선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 삼성이 강점을 보인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는 더 이상 신시장을 개척할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담긴 일성(一聲)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4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 같은 경영전략을 밝혔다. 권 부회장은 매년 초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연간 경영전략에 대해 설명해 왔다.
권 부회장은 올해 시장 상황이 밝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6년은 글로벌 경제 둔화 가능성이 있고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며 "스마트폰·메모리반도체·TV와 같은 회사 주력 제품의 공급과잉과 가격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부회장의 이런 위기 의식은 실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4·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6조1,000억원으로 6조원 선을 가까스로 사수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실적 방어 ‘효자’ 노릇을 해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하이엔드 스마트폰의 수요도 점차 줄어들고 있어 올해 매출과 영업익이 모두 작년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해 권 부회장이 내놓은 해답은 체질 개선이다. 그는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결 비즈니스), 공유경제 등 새로운 사업모델이 우리 회사의 강점인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소프트웨어로 경쟁력의 중심을 바꾸고 있다"며 "제품 개발과 운영·조직문화 등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 새로운 시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삼성의 저력으로 올해 파고를 넘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그는 “1969년 창립 이후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수많은 어려움을 도전과 혁신으로 극복해왔다”며 “그동안 축적한 저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겠다”고 설명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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