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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찾은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국내 두 번째이자 세계 다섯 번째 규모의 4고로(내용적 5,600㎥) 입구에 들어서자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철계단을 따라 용광로 바로 앞까지 올라가니 한 아름 정도 두께의 시뻘건 쇳물(용선)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분에 만들어지는 쇳물은 7~10톤 정도로 하루 1만4,500톤에 이른다. 중형 승용차 1대에 필요한 철은 1톤가량, 포항 4고로에서만 매일 1만4,000여대 분량의 쇳물이 생산되는 셈이다. 포항 3·4고로를 담당하는 권영철 제2제선공장장은 "연간 530만톤의 쇳물을 만드는 4고로만으로도 국내 5개 자동차회사가 필요한 철강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옮겨 고로를 통제하는 운전실로 들어가니 시설 안팎 주요 지점 모습과 고로에 투입되는 열풍의 온도, 압력 등 수치를 나타내는 10여개의 대형 모니터가 전면에 배치됐고 직원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가동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특히 오른쪽 벽면에 적힌 '기필코 달성, 광양 용선 원가 추월'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현장 관계자들은 '내부적인 목표'라며 문구를 쑥스러워했지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포스코의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쇳물 원가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는 시설 규모나 연식, 운영 노하우를 꼽는다. 포항 4고로가 경쟁 상대로 삼은 국내 최대 광양 1고로(내용적 6,000㎥)는 규모도 더 크고 개수 시점(2013년 6월)도 4고로(2010년 10월 개수)보다 최근이다. 이런 물리적인 차이에도 포항 4고로가 더 낮은 원가 구조를 만들려면 철광석과 코크스·석탄 등 원료의 배합 비율과 최적의 풍압·풍량·풍온을 조합하는 노하우를 결집해야만 한다.
세계 철강 전문 분석기관 WSD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에서 2010년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뺏겨본 적이 없는 포스코는 이처럼 스스로를 경쟁상대로 삼고 치열한 원가 다툼을 통해 최고 자리를 지켜왔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포항과 광양 제철소 간, 대형과 중형 고로 간 자존심 대결이 지금의 포스코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최근 철강업 불황과 계열사·투자자산 부실로 지난해 연결기준 첫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져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는 한편 철강 본원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연결 실적 부진에도 포스코 별도기준으로는 영업이익률 8.7%를 기록해 2014년보다 0.7%포인트 개선됐고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강판 판매 확대로 월드프리미엄(WP)제품 판매 비중은 같은 기간 33.3%에서 38.4%로 훌쩍 뛰어올랐다. 본업인 철강에 다시 사활을 거는 이유다.
권오준 회장이 올해 초 시무식에 앞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 역시 포항 4고로다. 포스코 철강재의 출발점인 쇳물 생산 현장에서 포스코 재건의 의지를 다진 그는 직원들을 격려하며 "용광로 같은 열정으로 '위대한 포스코'를 향해 달려가자"고 당부했다.
권 공장장은 "올해 역시 세계 철강 시황은 어렵지만 우리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낭비 줄이기 1인 1과제를 시행하는 등 경영 쇄신안 실천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15일 광양제철소 5고로 개수를 진행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철강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광양 5고로는 99일간 개수를 통해 내용적이 3,950㎥에서 5,500㎥ 크기로 확대된다. 내용적 5,500㎥ 이상은 초대형 고로로 분류되는데 전 세계에 이런 초대형 고로는 11기가 있으며 광양 5고로 개수가 끝나면 포스코는 모두 3개의 초대형 고로를 보유하게 된다. /포항=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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