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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코리아가 대형 세단인 S클래스의 인증절차까지 무시하는 방식으로 국내 법규를 위반한 것은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에서 드러난 윤리적 문제에 버금가는 비도덕적인 행위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말 부임한 디미트리스 실라키스(사진) 벤츠코리아 사장이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위해 의욕을 부리면서 빚어낸 촌극이라는 분석과 함께 과잉 마케팅이 기업 자체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이어지면서 인증절차를 무시하는 범법 행위까지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난해 연 매출 3조원에 월 4,000대 이상, 82종의 차량을 판매하면서 BMW코리아와 1위를 다툴 정도로 급성장한 벤츠코리아가 법을 어기고 고객을 속인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더불어 차제에 개별소비세 환급 거부 파동을 비롯해 벤츠를 포함한 수입차들이 한국 시장에서 벌여온 비도덕적인 행위 전반에 대한 수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비등하고 있다.
◇벤츠코리아 과잉 마케팅과 도덕적 해이에서 발생한 범법=정부는 지난 1999년부터 자기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연 500대 이상의 생산 규모나 안전 및 성능시험시설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정부의 검사 없이 업체가 스스로 제원이나 성능·연비 등을 시험해 주무부처에 신고하고 차량을 판매할 수 있다. 정부는 관련 사항을 추후 점검해 문제가 되면 리콜을 실시한다.
국산차뿐만 아니라 수입차 역시 자기인증제도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는 같은 차급에서도 외관은 비슷해도 배기량이나 출력·구동방식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차를 판매하기 때문에 자기인증제도에 민감한 편"이라고 말했다. 벤츠코리아가 이번 사안에 대해 기존 S 350 7단 변속기 차량과 S 350 9단 변속기 차량의 외관이 똑같아 발생한 '실수'라고 국토부에 해명했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총 4만6,994대를 판매했다. 판매량은 전년 대비 33.4% 급증했다. 비결은 대형 세단 S클래스의 인기다. S클래스의 판매량은 총 1만356대로 지난해 전체 벤츠 판매량의 25%나 차지했다. S클래스 판매는 1년 전(4,630대)에 비하면 2.5배 늘었는데 그중 인기가 가장 많은 차종은 S 350이다. S클래스의 절반 가까이(5,013대)가 S 350이었다. 업계에서는 9단 변속기 인증 과정이 길어지면서 9단 변속기 S 350 제대로 출시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차량 인증 업무를 하지 않고 출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벤츠코리아의 판매량을 챙기기 시작한 '실라키스 사장의 1등 주의'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초부터 높은 판매 실적을 위해 S클래스 출고를 서둘다 보니 기본적인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라키스 사장은 벤츠코리아로 부임한 후 벤츠코리아 판매 마케팅 담당 부사장 및 홍보 임원 등에 대한 광폭 인사를 단행하는 등 조직 다잡기에 나섰다. 또 연초 의욕적으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판매 1위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하지만 국토부의 S 350 4개 차종에 대한 판매 중지 결정으로 1위 경쟁에 비상이 걸렸고 본인의 거취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CEO 직접 조사와 엄중 처벌 필요 목소리=국토부는 벤츠코리아가 이번 사태에 고의성이 인정되면 검찰 고발에 따라 징역 1년 및 최대 1,000만원의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대당 2억원가량의 차량 판매에 따른 수익을 고려했을 때 1,000만원의 벌금은 지나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분석이다.
수입차 전반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벤츠가 개소세 환급 거부에 더해 일부 액세서리 제품은 국내에 30% 이상 더 비싸게 팔고 법까지 어겨가면서 차량 판매에 열을 올리는 문화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외국계 임원들은 판매량이나 수익면에서 실적을 보여주고 이를 발판 삼아 본사나 다른 지역으로 승진해가는 경우가 많다"며 "실적 우선주의이기 때문에 우선 팔고 보자는 관행 때문에 딜러 밀어내기 등도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벤츠코리아는 문제가 된 S 350 9단 변속기 차량을 출고 받은 고객들의 자동차 등록증을 재발급하는 절차 등을 대행하고 소비자들에게 소정의 피해 보상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같은 행위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경영 전략이 아닌 소비자를 속이는 중대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는데 땜질식으로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도원기자 theo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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