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이 지난 1월 8일 삼성생명이 매물로 내놓은 삼성생명 본관 사옥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양사 합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0억 원대 후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KB금융지주 등에서 삼성생명 본관 매입설이 꾸준히 흘러나왔지만 실제 계약 체결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부영은 삼성생명 본관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아직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영 관계자는 말한다. “삼성생명 본관 매입은 그룹 최상부에서 직접 추진한 일이라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일각에선 현재 부영그룹 본사를 삼성생명 본관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영그룹 본사와 수십 미터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으로 굳이 이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대사업을 하더라도 시설 좋고 대로변에 위치한 삼성생명 본관이 현재 부영그룹 본사 건물보다 훨씬 수익성이 나을 테니까요.”
삼성생명 본관은 지하 5층, 지상 25층에 연면적 8만7,000㎡ 에 이르는 대형 건물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영이 단번에 임대수익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어쨌든 당분간은 삼성생명 사옥을 임대해야 할 상황으로 보여요. 하지만 공실이 늘어날 경우 임대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서울 도심 권역 고급 오피스 공실률이 10%에 육박하는 상황인데다가 올해 공급되는 새 오피스 물량도 56만㎡를 넘기 때문이죠. 부영이 삼성생명 본관에 임차인들을 채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삼성생명 본관 매입으로 시선 집중
앞서 부영 관계자가 설명한 대로 굵직한 부동산 매입 건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직접 챙긴다. 부영의 삼성생명 본관 인수는 이중근 회장이 최근 벌이고 있는 부동산 매집의 연장선에 있다. 이 회장의 왕성한 ‘부동산 식욕’은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부영은 매각이 지지부진했던 인천시 송도 대우자동차판매 부지를 3,150억 원에 매입했다. 대우자동차판매 부지는 2014년 말 감정가 1조 481억 원에 경매가 시작됐지만 네 차례 유찰되면서 2,516억 원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부영이 꽤 싸게 매입한 셈이 됐다. 부영은 송도 대우자동차판매 부지에 도시개발 사업(53만8,600㎡)과 테마파크(49만9,575㎡)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부영은 수도권 골프장 인수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법원은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마에스트로CC 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회생계획안의 핵심 내용은 부영의 마에스트로CC 인수였다. 이에 따라 부영은 수도권 소재 골프장을 인수하게 됐다. 마에스트로CC는 18홀 회원제 골프장으로 서울 강남권에서 50~60km 정도 떨어져 있다. 부영은 마에스트로CC 인수금액으로 900억 원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은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오투리조트 인수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1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오투리조트 매각을 위한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부영을 선정했다. 매각가는 법원이 제시한 청산가치 782억 원으로 결정됐다. 부영은 오투리조트 부지에 포함된 국유지의 감정가를 추가로 지불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이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부동산 자산을 인수할 수 있는 배경에는 풍부한 현금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15개에 이르는 그룹 계열사 가운데 상장사가 한 곳도 없어 정기 공시 의무나 자본 조달 관계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지난해 부영의 매출액은 1조8,631억 원, 영업이익은 5,040억 원이었다.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2014년 말 기준 4조5,209억 원, 자본잉여금(9억 원)과 이익잉여금(1조4,682억 원)을 합한 사내유보금이 1조5,000억 원에 달했다. 이중근 회장의 개인 자산도 2조 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중근 회장은 1983년 부영의 전신인 삼진엔지니어링을 창립한 후 30여 년 간 임대주택 시장을 장악하며 막대한 현금을 쌓아왔다.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임대주택 건설사업은 일반분양과 달리 큰 이익을 얻긴 힘들지만 미분양 위험이 낮아 사업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 경기가 부진할 때도 부영은 임대아파트라는 틈새시장을 독점하며 오히려 덩치를 키웠다.
부영은 주로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5년·10년 공공임대아파트를 짓고, 이를 입주민들에 임대한다.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분양을 한다. 임대료로 버는 돈보단 분양 전환 자금이 부영에겐 더 큰 수입원이다.
부영은 지금까지 전국 335개 단지에 약 26만4,000여 가구를 공급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선 12위에 올랐다. 부영의 계열사 수는 15개, 총 자산 규모는 16조8,050억 원으로 재계 서열(민간기업 기준) 19위를 차지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공격적인 사업 확대
부영은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주택 건설용 토지 매입, 임대 아파트 건설, 분양 전환, 다시 토지 매입을 하는 사업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부영은 2003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옛 동아건설 빌딩을 인수해 본사를 입주시키는 등 글로벌 경제위기로 여러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꾸준히 부동산을 매입해왔다.
실제 이중근 회장은 일찍부터 토지 구매에 힘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이중근 회장은 과거부터 직접 땅을 보러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사둔 땅에다 아파트를 짓는 경우가 많았죠. 이 회장은 평소에도 ‘땅은 부영이 사업을 하기 위한 재료’라고 말한다고 해요. 건설회사니까 아파트 지을 부지를 사는 건 당연하죠. 때문에 부영은 비업무용 토지라는 건 없다고 얘기 하곤 합니다.”
부영은 토지 보유 면에서 국내 기업 중 가장 ‘큰손’에 속한다. 일찍부터 토지 구입에 힘을 쏟아온 이 회장은 1996년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원진레이온 공장 부지(현재 부영 그린타운) 매입 과정에서 현대와 삼성 같은 쟁쟁한 대기업을 물리쳐 화제를 뿌렸다.
2002년에는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로부터 평택시 고덕면 여염리 11번지 일대의 한국낙농목장 부지 140만 4,625㎡를 800억 원에 낙찰 받기도 했다. 민간 업체 택지지구 매입으론 최대 규모였다. 2011년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내놓은 화성 향남택지지구와 위례신도시, 경북혁신도시, 광주전남혁신도시 일부, 양산 물금지구 등에서 9,020억 원 어치의 땅을 사들이기도 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투기 의혹에 대해서 부영 관계자는 “구입 토지의 대부분이 택지지구로 시세 차익을 노리고 매물을 내놓은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부영의 부동산 매집 추세를 보면 부영이 호텔·리조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영 관계자는 말한다. “그룹 계열사인 부영주택 안에 리조트 사업본부까지 만들었습니다. 호텔·리조트·골프장 모두 일종의 렌트, 즉 단기 임대 개념 사업이라는 것이 이중근 회장님의 뜻입니다.”
부영은 이미 제주도에서 호텔·레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서귀포시 중문동 제주 중문단지에 제주 부영호텔&리조트를 세워 현재 영업 중이다. 이 시설은 대지면적 5만3,354㎡에 지하 2층~지상 8층, 262실 규모의 호텔과 지하 2층~지상 9층, 187실 규모의 리조트로 구성되어 있다. 부영은 이 호텔을 앞으로 1,300객실 규모의 호텔 4개 동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추진 중인 호텔 건설 계획도 있다. 부영은 지난 2009년 서울시로부터 매입한 뚝섬 일대 1만9,000㎡ 규모 부지에 지하 8층~지상 49층 규모의 관광호텔 3개 동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2012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맞은편 부지 5,327.12㎡를 중견 건설업체 삼환으로부터 1,721억 원에 사들여 관광호텔 건설을 추진해오고 있다.
부영은 민간 임대아파트 공급 사업 하나로 재계 19위에 오른 기업이다. 앞으로도 묵묵히 임대아파트만 지을 것 같았다. 부영은 업계에서 덩치에 안 어울릴 정도로 ‘소금보다 더 짠’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자산가치가 있는 토지와 건물은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단순히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텔, 리조트, 골프장 등 레저사업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부영이 과연 임대주택에서 호텔·레저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바꾸게 될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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