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출발점은 작은 의문에서 비롯했다. 지난 해 12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날 오리온은 국내 제과업체 최초로 중국 열차 내 매대와 역사(驛舍) 매점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며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중국 철도 유통채널 입점으로 오리온이 중국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찾은 셈이었다.
이 보도자료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오리온이 중국 철도 유통채널에 입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더케이그룹’이라는 회사였다. 오리온은 중국 현지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 현재 중국 제과업계 2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업체다. 이런 대기업이 이름도 생소한 작은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의아했다. 더구나 더케이그룹은 2015년 9월 창립한 신생기업이었다. 기자는 더케이그룹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오리온을 비롯한 더케이그룹의 거래 기업 몇 곳에도 보도 내용의 사실 관계 확인을 부탁했다. 거래 기업들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 한국산 식음료 제품의 중국 진출 가교
지난 1월 15일 서울 강남구 도곡로에 위치한 더케이그룹 본사에서 이재희 더케이그룹 대표를 만났다. 오리온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왜 중국철도 유통채널 입점에 더케이그룹의 손을 빌렸느냐고 직설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 대표는 말했다. “더케이그룹은 지난해 10월 중국 최대 철도 서비스 운영업체인 동가오(動高)그룹과 향후 10년간 동가오그룹이 운영하는 중국 철도 유통채널에 대한 한국 식음료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엄청난 권한이죠. 한국산 식음료가 동가오그룹이 운영하는 중국 철도 유통채널에 들어가려면 모두 저희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니까요.”
더케이그룹과 계약을 맺은 동가오그룹은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중국 최대 철도 서비스 운영업체이다. 동가오그룹은 특히 철도 유통채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가오그룹이 운영하는 중국 내 역사 수는 2,800여 개에 달하며, 매일 700여만 명의 중국인들이 이들 역사를 이용하고 있다. 동가오그룹이 역사 매장 및 열차 매대에 올리기 위해 지출하는 연간 상품 구매액만 6조 원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철도사업과 관련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펼쳐왔다. 사업권 입찰은 물론 역사나 열차 내 매장에 입고되는 상품까지 제한을 둘 정도였다. 특히 한국 기업의 상품은 특정 이벤트를 제외하곤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좀처럼 빗장이 열리지 않았다.
이 대표는 덧붙인다. “지금까지는 한국산 상품을 받으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으니 아무리 국내 유명 기업이라고 해도 입점할 방법이 없었죠. 저는 시기를 잘 탄 겁니다. 운이 좋았죠. 최근 한·중 당국 간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한·중 FTA도 타결된 데다 중국 내 한류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서 상황이 굉장히 우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역사나 열차에서도 한국산 물건을 팔 수 있게 끔 분위기가 형성된 겁니다.”
● 중국 사업 개발 및 투자 컨설팅 주력
이 대표는 더케이그룹을 ‘중국 사업 개발 및 투자 컨설팅 업체’라고 소개했다. 더케이그룹은 현재 두 가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철도 유통채널에 국내 식음료 상품을 입점시켜 관리하는 일과 안후이성(安徽省)에 위치한 화상국제식품성 한국관을 운영하는 일이다. 두 사업 모두 유통업 계통이다. 앞으로는 엔터테인먼트나 테마파크, 부동산 개발 사업 등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더케이그룹이 현재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사업 내용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지역적으로는 안후이성에, 사업 방식으로는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말한다. “기본적인 사업구조는 거의 같습니다. 더케이그룹이 가교 역할을 하는 거죠. 중국 쪽에 네트워크가 상당하거든요. 한국의 실력 있는 기업들을 중국의 자본과 엮어서 중국 현지에서 사업하는 식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재희 더케이그룹 대표는 중국, 그중에서도 특히 안후이성에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동가오그룹과 한국 식음료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도 동가오그룹 경영진과 상당한 유대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더케이그룹의 사업이 안후이성에 집중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대표는 안후이성 한인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안후이성의 정·재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안후이성의 화상국제식품성 한국관 운영권을 따낸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이 대표는 말한다. “사실 제가 중국과 인연을 맺은 건 3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양질의 인맥을 쌓았죠. 시작이 좋았습니다. 천운이 따랐죠. 그 넓은 중국 땅에서 저랑 같은 청년회의소출신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안후이성의 한인회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신 이 분이 저를 지역의 유력 인사들에게 소개해줬는데, 그분들이 저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흔히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먼저 사업 상대방과 친구가 되라고 하잖아요. 전 그들의 친구가 됐습니다. 그렇게 계속 인연을 만들어가다 보니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됐고, 그분들이 여러 사업을 같이 하자고 권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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