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형지의 자회사인 형지엘리트가 개성공단 입주기업에게 10억여원의 대금 지급을 미룬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협력업체들에게 자사 원부자재를 두고 나왔다는 이유로 이미 납품받은 물건의 대금 지급을 연기한 것. 개성에 놓고 온 원부자재의 가치를 상계처리한 후 차액을 지급하겠다는 논리에 동종업계 관계자들도 고개를 저었다. 패션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미 납품한 물건값은 제때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원부자재 핑계를 대는 것은 억지스럽다”며 “협력업체에게 지급한 원부자재에 대해 부동산 담보까지 설정해놓고 상계처리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말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형지엘리트는 대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논란의 핵심에 대해 사과 없이 오히려 상생 기업처럼 비춰졌다는 것이다. 당시 최병오 형지 회장은 “국내 의류·봉제산업의 상생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업체의 임가공 거래대금을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형지 관계자는 “형지엘리트는 개성공단 협력업체들과 여러 차례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며 “1개 업체는 대금지급을 완료한 상태고, 나머지 3개 업체도 대금을 지급키로 협의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형지의 원칙없는 세일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최 회장의 지시로 노세일 원칙을 고수하는 까스텔바작과 달리 크로커다일레이디·올리비아하슬러·샤트렌 등은 신상품마저 30~50% 싸게 팔아 원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는 것. 특히 최 회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업체의 신상품 세일 정책을 비난하며 “까스텔바작만큼은 세일을 남발하지 않고 가성비를 높이는데 주력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겠다”고 말해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50대 주부 박모씨는 “같은 회사 옷인데 어떤 건 절대 세일을 안하고 어떤 건 나오는 족족 반값에 팔아버리니 도통 원가가 얼만지 신뢰가 가질 않는다”며 “가격은 브랜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인데 원칙없는 기업을 자처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양재·논현·관악 일대의 형지 매장들을 조사한 결과 올 봄 대표 신상품마저 30~50% 세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샤트렌 봄 신상 경량패딩은 35만7,000원짜리를 45% 할인한 19만9,000원에 판매했고, 정가 28만5,000원인 겨울 패딩은 75%나 내린 6만9,000원에 팔고 있었다. 올리비아하슬러·크로커다일레이디의 경우 백화점 매장에서조차 봄 신상품을 30% 할인중이었다. 이에대해 형지 측은 “이같은 세일 정책은 로드샵 브랜드 특성상 형지 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들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즌 교차 시기에 겨울 상품 세일 폭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밖에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대한 리스크 위험 △대리점주들과의 잦은 갈등 등도 형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례들이다. 형지는 지난해 골프의류 론칭과 에스콰이어 인수에 이어 홈 퍼니싱·식음료 사업 진출 의지를 밝히는가 하면 부산지역 면세점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는데, 업계에선 신사업 역량을 키우기보다 우선 사업을 따고 보자는 단기 전략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업계 관계자는 “형지가 욕심을 내는 신사업들이 모두 기존 패션과는 전혀 다른 유통 방식과 채널 전략이 필요한 분야여서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며 “국내 패션업계의 허리 격인 형지가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불황기를 극복하는 모습이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민·신희철기자 noenemy@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