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과 남대문 시장 일대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채업자 A씨의 휴대폰은 요새 부쩍 자주 울린다. A씨는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된 이후 최근 일주일 동안 대출문의 건수가 평소보다 20%는 늘었다”며 “예전에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에서 돈을 빌릴 법한 사람들의 연락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A씨는 연 이자 120%를 받는 불법사채업자다.
또 다른 사채업자 B씨도 최고 금리 인하에 따른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B씨는 “법정 최고 금리가 낮아질 때마다(2007년 49%, 2010년 44%, 2011 39%, 2014년 34.9%) 사채시장이 커지는 풍선효과가 일어났다”며 “금리가 낮아진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아직 눈에 띄는 증가세는 없지만 결국 불법 개인대출이 많아질 것이라고 이 바닥 종사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고 말했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가 연 34.9%에서 27.9%로 낮아진 가운데,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될 저신용자들을 노리는 사채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아직 눈에 띌 정도로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축은행과 제도권 대부업체들이 기존 대출의 숨통을 조일 경우 저신용자 상당수가 사채 시장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유혹하는 개인대출 ‘찌라시’는 서울 도심 번화가는 물론 주택가 골목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자극적 문구와 함께 흩뿌려져 있다.
일선 저축은행 창구에서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출 축소나 대출 한도 제한 움직임이 벌써 포착된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100명이 대출 신청을 하면 35명 정도가 받았다면 최근에는 30명으로 줄었다”며 “앞으로는 대출 한도를 줄이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저축은행의 관계자도 “최고금리 인하 이후 전반적으로 대출이 10~2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본다”며 “정확한 건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현장에선 대출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계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라 저신용자 대출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연체율이 높은 저신용자에 27.9%의 법정 최고금리를 적용할 경우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논리다. 저축은행들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연체율이 높은 신용 8~10등급의 저신용자 가운데 대출이 가능한 대상자를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도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그나마 29%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이자율을 맞춰왔는데 그보다 더 떨어져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도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수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금리상한 인하에 따른 저신용자 구축 규모의 추정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 축소로 제도권 금융의 혜택에서 벗어나는 저신용자가 최소 35만 명에서 최대 74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금리 인하에 따른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제도권 금융이 저신용자 대출은 줄이고 우량고객 중심으로 고객군을 재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가 44%였을 때 신규 대부업 이용자 중 69.2%가 신용 7등급 이하였으나, 39%와 34.9%로 낮아져서는 저신용자 비중이 각각 62.2%, 57.8%로 떨어졌다. 반면 신용 4등급에서 6등급 사이의 비중은 최고금리가 44%일 때는 31%였으나, 최고금리가 34.9% 기간에는 42.0%로 증가했다. 금리 인하에 따라 제도권 금융이 우량고객 확보에만 주력하면서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을 못 받는 저신용층이 불법 사채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의 관계자는 “사금융 신고센터을 통해 모니터링 하고 있으나 최고금리 인하 이후 불법대출이 늘었다는 신고는 없었다”고 했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안다”며 “금감원과 경찰 등 수사당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하며 필요할 경우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금리 인하의 역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신용등급에 따라 차등화된 법정 최고금리 제한을 두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최고금리 인하가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맞물려 촘촘한 정책적 판단 없이 이뤄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차원이다. 이수진 연구위원은 “금리상한 제도의 취지가 신용도와 상환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고금리를 부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금리상한 인하로 인해 저신용자가 제도권 바깥으로 가게 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리 상한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에 따라 차등화한 금리 상한을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두형기자 mcdjrp @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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