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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물결'을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의 경제공식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물인터넷(IoT)으로 수요와 제품의 상황을 파악해 최적의 생산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인더스트리 4.0'은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사례다. 인공지능(AI)과 로봇, 3D프린팅, 바이오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은 지금의 경제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IoT만 해도 앞으로는 소유경제가 아닌 공유경제로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요와 공급의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면 언제든 빌려 쓸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셈이다.
최근 트렌드로 부상한 '카셰어링'이 그 예다. 집을 비롯해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공유경제로 이뤄질 수 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기술 기반의 플랫폼이 발전해 공유경제와 고객이 요청하면 바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디맨드 경제(on demand economy)가 부상할 것"이라며 "다양한 서비스 및 사업 모델이 나오면서 쉽게 창업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분야별로 보면 변화의 정도가 더 두드러진다.
당장 AI는 경제주체는 물론이고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요소다. 이미 로보어드바이저가 도입됐고 미국 마스터카드는 카드상품 판매 업무에 딥러닝 기능을 갖춘 AI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단순 노동과 서비스업의 경우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AI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경제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개도국은 낮은 기술 수준에도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AI와 로봇이 더 일반화되면 이 같은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기업과 개도국의 후발 기업도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 이 중 미국은 AI와 로봇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또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UBS증권은 AI의 확산과 관련해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승자가 될 것이지만 개도국은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오헬스케어 역시 지금까지의 경제·기업운영 방식을 바꿔놓을 핵심 변수다. 우선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산업의 세계 시장규모가 지난 2013년 330조원에서 오는 2020년에는 무려 635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불치병 치료기술이 확대되고 생명연장의 꿈이 이뤄지면 시장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스마트카를 비롯해 무인 이동수단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을 한층 촉진시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AI와 로봇은 고령에 따른 안전 문제와 사회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VR)도 교육과 레저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VR 기기를 이용하면 우주와 남극은 물론이고 공룡까지 만나볼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교육제도와 관련 산업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만큼 우리 기업들이 재빨리 '서핑 포인트(파도타기 좋은 곳)'를 찾아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2차·3차 산업혁명에서는 우리나라가 뒤졌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한발 앞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결과적으로는 IoT나 AI·바이오 등이 가장 유망한 분야"라며 "기업별로 상황에 맞는 분야를 찾아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 등을 공격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AI와 바이오는 첫손에 꼽히는 유망 분야다. 삼성과 SK가 바이오에 '올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IoT는 융합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4차 산업의 성패를 가를 AI는 국가경제와도 직결된다.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AI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20년가량 차이가 난다는 얘기도 있다. 구글 같은 기업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AI와 그에 따른 지도 및 위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리나라 국민과 기업이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국내 산업기반과 국가 안보가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배일한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AI 분야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이 AI 서비스를 독점하게 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여기에만 의존해야 해 개별 기업 경영은 물론 산업기반 자체가 특정 업체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며 "자체적인 경제성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라도 AI 분야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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