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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의 수주 가뭄 고통이 중형 조선소일수록 가중되고 있다. 대형 조선소의 경우 그나마 2~3년은 버틸 수 있는 수주 잔량이 남았지만 중소형 조선소들의 사정은 더욱 안 좋다. 일부 조선소의 경우 올해부터 도크(선박건조대)가 비어가는 등 일감 공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SPP조선의 경우 22개월째 수주 실적 제로(0)다. 지난 2014년 5월 이후 수주가 뚝 끊겼다. 수주 잔량은 17척, 7,000억원 규모다. 마지막 선박 건조 물량에 대한 진수가 오는 8월 말 이뤄지면 9월부터는 도크가 빈다. SPP조선의 한 관계자는 "9월부터는 물에 띄워 진행하는 마무리 의장 공사밖에 남지 않게 된다"며 "지금 수주를 한다 해도 5개월 정도 도크가 비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간 40척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STX조선의 수주 잔량은 현재 63척이다. 그렇기 때문에 STX조선은 올해부터 생산 도크를 대폭 줄여 연간 20~30척만 만들 계획이다. 생산량을 크게 줄였지만 2017년 말이면 일감 공백이 불가피하다.
성동조선은 55척, 3조원에 해당하는 일감이 남아 있다. 최대 내년 3·4분기까지 버틸 수 있는 물량으로 올해 추가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중반 이후 가동률 급락이 불가피하다.
대형 조선사의 경우 그나마 수주 잔량 면에서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낫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현재 수주 잔량은 3년치 일감에 해당하는 426억달러(약 51조원)어치다.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 포함)은 총 227척, 380억달러로 2년치 일감이 남아 있다. 삼성중공업도 355억달러어치의 수주 잔량으로 2017년 말까지 버틸 수 있다.
이달 역시 수주 가뭄이 이어지면서 조선소 관계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특히 연내 수주 잔액이 바닥나는 SPP조선의 경우 막판 인수합병(M&A) 협상 지연이 발목을 잡고 있다. SPP조선의 경우 그동안 채권단의 선수급환급보증(RG)을 받지 못해 수주할 수 없었으며 이제는 삼라마이더스(SM)그룹과 M&A 협상 지연이 걸림돌이다. SPP조선 관계자는 "빨리 새 주인이 결정돼야 선주사들도 발주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주사들이 문 닫는 조선소에 발주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김철년 성동조선해양 대표는 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해외 선주사를 방문, 영업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주에도 선주사를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왔다. 조선사 대표는 최종 계약단계에 왔을 때 선주사들과 미팅을 갖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전례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게 업계 분위기다. 성동조선의 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당장 발주가 나올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시장이 호전돼 발주가 이뤄지기 전에 회사의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에 대한 선제적인 홍보활동을 벌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STX조선 역시 중형 탱커를 위주로 영업활동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STX조선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발주가 나오고 있는 탱커 수주를 위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전년 대비 전 세계적으로 수주량이 10분의1로 급감하면서 조선업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수주 가뭄이 풀리지 않으면 일감이 바닥나는 회사들이 속속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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