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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그룹은 지금] 삼성그룹

숨가쁘게 이어지는 사업구조 개편 이재용의 ‘뉴 삼성’ 윤곽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1등이 될 수 있는 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많은 언론매체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이런 전략을 ‘실용주의’로 묘사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돈 안 되는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핵심사업에 집중하는 이 같은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삼성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신년 하례식과 신년사를 모두 생략했다. 대신 주력 계열사 현장을 찾았다. 지난 1월 4일 오전, 이재용 부회장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을 방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곳에서 삼성전자DS(부품)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의 주요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오후엔 수원 디지털시티를 방문해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및 IM(IT·모바일)부문과 삼성SDS의 임원들을 만났다.

2014년까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신년 하례식를 열고 신년사를 발표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처럼 통상적인 의식을 생략한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를 두고 ‘실용주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용주의의 핵심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에 ‘올인’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사령탑을 맡으면서부터 철저하게 실용주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과도한 형식이나 불필요한 격식을 줄이고 있다. 올해 삼성그룹은 전용기를 대한항공에 모두 매각했다. 해외 출장 시 별도의 수행원 없이 혼자서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이부회장의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수익성 강화 전략으로 내실 다지기
이재용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국내외 경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다.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직까지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공세와 시장 변화에 따라 삼성에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요구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매출액 20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매출액은 갤럭시S4와 갤럭시노트4가 세계 시장을 휩쓴 2013년 사상 최대치(228조6,900억 원)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전년대비 2.7% 감소한 200조6,535억 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사업 부문에서 실적이 둔화됐기 때문이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의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32% 감소했다”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두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품 가격 급락으로 수익성 방어에 한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 S7이 2월에 나온 점을 감안하면 신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상황이 더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도 전반적인 IT 수요 약세로 전년 수준의 실적 유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형 성장보다는 고부가가치 전략제품을 통한 수익성 강화 전략으로 내실 다지기에 주력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는 외형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화학 계열사를 매각한 것도 이런 경영철학과 연결된다. 지나치게 중복된 사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한 것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0월 성정밀화학·삼성BP화학·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한화그룹에 화학·방산 부문 4개 계열사(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를 매각한 데 이어 남아 있던 화학 계열사를 모두 정리함으로써 삼성의 비주력사업 철수의 첫 수순이 마무리됐다.


IT·금융·바이오 분야에 집중
삼성은 비주력 사업 매각을 통해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했다. 이는 신수종 사업육성에 투입될 예정이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IT·금융·바이오 분야에 집중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설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특히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부분은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M&A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기 위해선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신기술 전문 업체를 사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역시 ‘이재용식 실용주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삼성전자가 진행한 M&A는 2014년 5월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8건에 달한다. 2015년 2월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한 것은 가장 큰 소득으로 평가받는다. 마그네틱 보안 방식 결제 특허를 갖고 있던 루프페이를 인수하면서 삼성전자는 간편결제시장에서 ‘삼성페이’의 범용성과 편리성을 인정받게 됐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업체 스마트싱스도 인수했다. 삼성은 이 회사의 기술을 이용한 ‘슬립센스’를 내놓았다. 약 1cm의 얇은 두께로 납작한 원형인 슬립센스는 침대 매트리스 밑에 놓아두면 신체 접촉 없이 사용자의 각종 생체활동을 실시간으로 감지·분석한다. 이에 맞춰 에어컨·TV·오디오·전등 등을 조정해 사용자가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삼성은 앞으로 스마트싱스의 플랫폼을 활용해 각종 IT 제품이 연결되는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그룹의 ‘투톱’으로 하는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삼성생명 서울 지역 영업담당 사업부장 등 10여명을 만나 “삼성생명은 그룹 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회사”라며 우량 설계사등 핵심 인력 위주로 생명보험사업을 운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1월 28일 삼성전자가 보유했던 삼성카드 지분 37.45%를 1조 5,405억 원에 인수하며 1대 주주에 올라섰다. 이로써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카드의 지분은 71.86%까지 올라갔다. 삼성생명 측은 공시를 통해 주식 취득 목적을 “사업 에너지 확대 및 안정적 투자수익 확보”라고 설명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카드는 삼성 금융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비금융회사(삼성전자)를 대주주로 두고 있었다”며 “이를 해소하면서 삼성 내 금융회사들은 모두 삼성생명이 지배하는 모양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맡고 있다. 삼성은 바이오 의약품 사업을 생산과 개발 부문으로 분리·운영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 의약품의 생산을 담당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 시밀러의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특히 미국 업체들이 삼성의 바이오 사업에 투자한 것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미국 제약사 퀸타일즈는 삼성 바이오로직스에 2.2%의 지분을 투자했다. 퀸타일즈는 임상시험 컨설팅, 신약 프로젝트 관리, 상용화, 사후 모니터링 등 신약 개발의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한 회사다.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을 개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의 바이오젠은 복제약을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8.8%를 보유하고 있다.

전 삼성메디슨 직원은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특허 만료된 약품을 복제해 대량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주력”이라며 “삼성이 가장 잘하는 사업방식에 딱 맞다. 그다지 혁신적이진 않지만 대규모 투자로 설비를 갖추고 규모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카 부품 시장 진출
업계에서는 삼성이 화학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사업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는 것이 1997년 IMF 외환위기 1년 전인 1996년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의 실적은 1995년에 비해 매출은 1% 줄었고, 영업이익은 66% 급락했다. 당시 삼성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 절감에 나섰다. 이익이 나지 않는 한계기업을 팔았고 유휴 부동산도 정리했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해 연말 조직 개편을 마쳤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조직 개편을 통해 미래 사업 육성 의지를 피력했고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경영 효율성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마무리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9일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도 단행했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장사업팀의 신설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겸 부회장의 직속 부서로 운영되는 전장사업팀은 과거 삼성자동차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박종환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C&M(컴프레서·모터)사업팀장을 초대 팀장으로 선임했다.

삼성전자의 전장사업팀 신설은 자동차 핵심 부품 제작 사업에 새롭게 진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은 각 계열사에 산재한 자동차 부품 연구 역량을 전장사업팀으로 한데 모아 스마트카에 들어갈 핵심 부품 연구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앞으로 만들게 될 부품은 운전자에게 자동차의 현재 상태나 교통 상황 등 각종 정보를 전달해주는 텔레매틱스 시스템이나 자동차용 카메라 모듈, 무선통신 모듈, 전기차용 배터리 제어 시스템 등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카 부품 시장에 진출할 경우 이미 자동차 부품 시장에 진출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LG전자와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해외 시장에서는 스마트카 개발에 이미 뛰어든 애플과 구글이 삼성의 맞상대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숨가쁘게 조직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아직도 남은 과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주택사업 부문 매각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설, 삼성물산·삼성SDS 합병설 등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삼성SDS와 삼성SDI의 합병이나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사업부 통폐합 등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실용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이재용의 삼성’에겐 아직 털어낼 사업이 아직 많다는 시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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