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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메르스와 맞서 싸운 국가 공공의료기관 현대화 프로젝트로 국민건강 책임질 터”


국립중앙의료원은 대한민국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곳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에는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지정되어 존재 이유를 다시 각인시켰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새로운 변화를 계획하고 있는 안명옥 원장을 만났다. 하제헌 기자 az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국립중앙의료원은 한국전쟁 당시 의료지원을 수행했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이 한국 정부와 함께 만든 국립의료원으로 출발했다. 1958년 11월 28일 세워진 국립의료원은 2010년 4월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서 명칭을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바꿨다.

국립중앙의료원은 1958년 설립 당시 아시아 최고 병원을 목표로했다. 시설과 장비도 최고 수준이었고, 당연히 전문의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죽기 전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소원”이라는 환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인식은 ‘시설이 낙후돼 돈 없는 사람이나 가는 병원’으로 변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돈 없는’ 취약계층만 진료하는 의료기관이 아니다. 엄연한 종합 의료기관으로 일반인 환자 진료를 수행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492개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진료부도 26개과(치과 포함)와 한방진료부 3개과가 있다. 의료진은 전문의 105명, 전공의 108명, 간호직 354명이 근무한다. 물론 국가 중앙 의료기관인 만큼 민간의료 분야에서 담당하기 힘든 국가적 규모의 감염병 대응과 취약계층의료 지원, 해외 의료 지원 등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 응급의료센터, 공공보건 의료지원센터, 공공보건 의료교육 훈련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 의료정보망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안명옥 원장은 국립의료원이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법인화된 이후 취임한 3대 원장이다. 국립중앙의료원장은 공모를 통해 채용된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사회에서 서류 및 면접 심사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종 임명한다.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임기는 3년이다. 이후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법인화 이후 세 번째 원장
2014년 12월 22일 국립중앙의료원장에 취임한 안 원장은 5개월 뒤 엄청난 테스트를 받았다. 메르스(MERS ·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일어났다. 2015년 5월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이후 환자 진료에 투입됐던 국립중앙의료원이 2주 뒤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됐다. 안 원장은 국립중앙의료원 전체를 메르스 환자 치료 · 관리 및 병상 확보 등에 주력하는 메르스 전담체제로 전환했다. 2015년 7월 20일 국립중앙의료원 기능이 정상화된 후 확진 환자 30명, 의심 환자 37명(2015년 12월 말 기준) 등 총 67명을 의료원 내 의료진 및 직원의 감염 없이 진료했다.

안 원장은 ‘공공의료를 선도하는 국가 중앙병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안 원장은 말한다. “너무나 긴장됐습니다. 제 방에 간이 침대를 놓고 하루 2~3시간 자면서 두 달을 버텼어요. 여기서 감염자가 한 명 나오면 대한민국은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료진 중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다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럼 환자는 누가 봐요. 국립중앙의료원은 병동 2개를 폐쇄하고 음압병상(병실 안 기압이 외부보다 낮아 문밖으로 공기가 나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병실)으로 이용했어요.”

안명옥 원장은 어려서부터 공공보건 의료인이 되고 싶었다. 안 원장은 국립중앙의료원과 인연이 깊다. 1958년 국립의료원 개원 때부터 재직해 13대 국립의료원 원장을 지낸 박찬무 박사가 안 원장의 이모부다. 안 원장의 부모님도 의사였다. 어머니는 안과 개업의였다. 특히 감염내과학을 전공하고 인천검역소장을 지낸 아버지는 그에게 롤모델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적 헌신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공무 중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가 존경스러웠어요. 아버지가 국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저도 의료 공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안 원장은 연세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료 공무원이 되겠다는 그의 꿈은 더 명확해졌다. “당시 연세대 의대 도서관 사물함 위에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라는 쑨원의 문구가 쓰여 있었어요.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중국의 국부라 불리는 쑨원은 의사였어요. 아버지의 커리어와 함께 이 문구가 제게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안 원장은 1979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그는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당시 의사로서 공무원이 되려면 예방의학을 전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교수님이 예방의학과는 남학생만 뽑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예방의학은 의료정책을 함께 다뤄야 하니까 여학생은 선발할 수 없다는 거였죠.” 차선책으로 산부인과를 택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의대에서 예방의학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보건학 석 ·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보건학 전공은 정확히 말하면 ‘인구 및 가족보건학’이었어요. 그곳에서 그토록 원했던 보건정책을 배울 수 있었죠. 정치 · 경제 · 사회학까지 배울 수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의료 공무원 꿈꿔
1989년 미국에서 귀국한 안 원장은 차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연세대 의대 2년 선배인 차광렬 박사(현 차병원그룹 총괄 회장)가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제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산부인과 조교수를 하고 있을 때 차광렬 박사가 펠로우로 왔어요. 원래 연세대 의대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 방까지 다 준비해놨다고 해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원장은 차병원에서 즐겁게 근무했다고 말했다. 안원장은 차병원에서 라마즈 분만법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고 가족분만실도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었다.

그가 ‘정책’을 다루게 된 건 국회에서였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 “저는 의료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을 하고 싶지 국회의원은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국회의원도 일종의 공무원이라며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저를 설득하더군요.” 그는 비례대표 19번을 받았다. 뒤쪽 순번이어서 국회 입성은 어려울 듯했다. “그런데 비례대표 21번까지 당선됐어요. 사실 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의사로 일하면서도 보건복지부 · 여성부 · 노동부 · 환경부 · 행자부와 계속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여성가족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한 그는 17대 국회 1호 의안을 발의했다.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이었다. 12개 부처 장관과 여야 의원을 모아 대책특위를 만들었다. “저출산 고령사회를 대비하려면 사실 대한민국의 모든 게 변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완벽한 의미의 양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이에요. 아직 실현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초대 이사장인 그는 17대 국회의원직을 끝낸 이후엔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여성 · 아동 미래비전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장애 · 아동 권리협약, 여성 차별 철폐 등에 관한 법안들을 제안했다. 그가 제시했던 많은 법안들은 19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국립중앙의료원 법인화 이후 세 번째 수장에 오른 안 원장은 시작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국립중앙의료원을 파악해가며 조직 장악력을 높였다. 취임 100일째였던 지난해 3월에는 10대 중점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미충족 필수 공공의료 서비스 확대 강화 ◆인적자원의 역량 강화 및 자발적 혁신 문화 조성 ◆공공보건의료 네트워크 구축 ◆지역사회 보건의료사업 강화 ◆소외계층 보건의료 및 건강증진 사업 확대 ◆통일 보건의료 준비 ◆국제 보건의료에서 역할 강화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 추진 ◆현장 중심의 공공보건의료 모델 구축 ◆원지동 시대, 최첨단 공공의료의 랜드마크 병원 설립이 그것들이다.


감염병 대응 위한 ‘안심응급실’ 설치
안 원장이 제시한 10대 추진과제에는 명확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 구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안 원장 취임 이후 첫 추진 사업은 15개 병상의 호스피스 병동 운영이었다. 최근에는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 지정을 앞두고 ‘안심응급실’을 설치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통해 국내 응급실 시스템이 감염병 대응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체 메르스 환자(186명) 중 절반에 가까운 환자(89명)가 응급실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심응급실’은 응급실 환자(중증, 경증, 감염)별로 동선을 세분화해 분리하고, 충분한 병상 간격을 확보했다. 특히 감염병 (의심)환자를 대비해 음압격리실 2개도 설치했다.

법인화 이후 1대 원장이었던 박재갑 원장이 공무원 조직에서 민간조직으로의 개혁과 경영 혁신을, 2대 윤여규 원장이 재정적 자립을 추진하는 등 의료원 생존을 중심에 뒀던 경영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의료서비스로 벌어들이는 돈과 국가보조금으로 운영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재정자립을 목표로 2010년 법인화 된 후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건강 증진기금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보조금 200억 원을 받았다. 올해는 250억 원으로 늘었다.

이 부분에서 안 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재정자립은 쉬운 게 아닙니다. 국립중앙의료원에는 취약계층이 주로 와요. 취약계층을 돌보는 건 복지입니다.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존재 이유는 분명해요. 복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에요. 올해 보조금 액수가 늘어난 건 지난해 메르스 사태로 병원 운영을 두 달간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국립중앙의료원은 국가재난병원이어서 33개 병상을 항상 비워놔야 합니다. 최소한 300억 원은 지원해 줘야 해요.”

안 원장은 전국에 있는 병원들이 비보험 진료로 벌어들이는 돈이 병원 한 곳당 연평균 300억 원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비보험 진료를 하면 1년에 300억 원을 더 벌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국립중앙의료원이니까 비보험 진료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저는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에게 양심에 따라 최적정 진료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 원장은 국립중앙의료원이 재정자립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연구동 건물 복도 조명도 꺼놓고 종이 한 장도 아껴 쓴다고 설명했다. “제가 투자유치를 한 번 해보려 했지만 공공보건의료기관이라 어려웠습니다. 국가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을 공공보건의료기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투자에는 인색했어요. 투자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워요.”


공공의료기관도 투자해야 발전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시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있다. 원지동 이전은 국립중앙의료원의 ‘현대화’ 의미를 넘어선다. 안원장은 원지동 이전을 공공보건의료체계의 대대적 기능 재편 계기로삼겠다는 계획이다. 안 원장은 말한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물론 테러, 재해 등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려면 시설 · 장비 현대화와 더불어 건물 구조 변경 등 시설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주춤거릴 여유가 없어요.”

안 원장은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임명장을 받은 직후 원지동 현장을 방문해 진행상황을 점검했다. 한때 원지동 이전 부지에 문화재가 매장돼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전 작업이 멈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원지동 이전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추가적으로 실질적인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안 원장은 설명했다.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은 순항 중입니다. 2018년은 국립중앙의료원이 6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새로운 국립중앙의료원의 60년, 아니 ‘건강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 200년을 준비하는 현대화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메르스 사태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힘은 국가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책임감과 공적 헌신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설환경 개선도 적극 추진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가대표 병원으로서 위상을 회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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