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대 초반 국내 주식시장에서 ‘바이코리아(Buy Korea)’ 돌풍을 일으키며 증권 명가(名家)로 군림했던 현대증권이 54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 주인을 맞게 됐다. 현대증권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13년 현대상선 재무구조개선 계획을 발표할 당시 마지막까지 매각을 주저했을 만큼 튼실한 회사였지만 모기업의 유동성 위기로 ‘현대’라는 간판을 내려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현대증권의 전신은 1962년 6월에 세워진 국일증권이다. 현대그룹이 1977년에 이를 인수한 뒤 1986년 ‘현대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졌다. 현대증권은 이익치 사장 시절인 1999년 ‘바이코리아’ 펀드를 출시하며 국내에 주식형펀드 전성시대를 열었다. 당시 바이코리아펀드는 ‘저평가된 한국 주식을 사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출시 3개월 만에 12조원 넘는 돈을 끌어모아 국내 주식시장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업계 10위권을 맴돌던 현대증권은 바이코리아 열풍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 업계 1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현대증권은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계속된 노사갈등, 증권업 불황 등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자기자본 규모는 업계 5위권을 유지했지만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WM) 부문에 집중 투자하며 체질개선에 나선 다른 대형 증권사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현대증권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한때 ‘제2의 바이코리아’를 만들자는 열망이 있었지만 지난 2년 동안 매각 이슈에 노출되면서 직원들의 피로감도 커졌다”며 “현대라는 간판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이제 새 주인이 적극적인 투자로 침체돼 있던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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