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차녀 이서현(42)씨가 입사 13년만에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을 맡으며 '패션 명가 재건'에 나섰다. 하지만 장기불황과 유니클로를 비롯한 글로벌업체의 공세 여파로 3·4분기 누적 적자가 250억원에 이르는 등 과제가 산적해 험로가 예상된다. 재계에선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순간에 전면에 등장해 삼성 패션을 살리겠다는 배수진을 친 만큼 조직 전반에 '이서현식 혁신'의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관측한다.
오빠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언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이어 오너 '책임 경영'의 본격 시험대에 오른 이 사장에게 놓인 주요 과제는 △에잇세컨즈 글로벌 진출 △스마트웨어 상용화 △모바일 채널 강화 △준지 등 글로벌 브랜드 육성 △잡화 강화 등 크게 5가지다.
우선 이 사장이 직접 기획한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글로벌 전략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내년 상반기 상하이에 첫 매장을 열고 중국에 진출하는 에잇세컨즈는 동시에 알리바바그룹의 티몰에도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하고, 하루 방문자가 1억명인 소셜커머스 '쥐화수안'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의류와 액세서리, 시계 등에 IT기능을 적용한 웨어러블 스마트웨어도 이 사장이 각별히 신경쓰는 분야다. 지난해말 신소재 R&D팀 산하에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스마트웨어 개발에 나섰고, 지난 9월 재킷 손목부위에 스마트 버튼을 내장해 명함·문자메시지를 전달하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앞으로 교통카드·회사 출입증·신용카드 결제 등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스마트웨어를 개발해 업계를 선도하겠다는 각오다.
지난 9월 빈폴·에잇세컨즈 등 브랜드별 온라인몰을 통합한 'SSF숍'을 바탕으로 모바일 채널 강화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이를위해 사물인터넷 개발에 속도를 내는 한편 중국 모바일시장 공략을 위한 시스템도 연내에 구축키로 했다.
글로벌 메가 브랜드 육성에도 박차를 가한다. 최근 이태리 최대 남성복 박람회 '삐띠워모'에 초청된 디자이너 브랜드 '준지'를 앞세워 국내외 영업망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론칭한 롯데 본점에서 월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삐띠워모를 통해 세계 명품 브랜드로 거듭나면 5년 내 매출 1,000억원의 메가브랜드도 가능하다는 자신이다. 노나곤은 지난해 9월 YG와 손잡고 밀란·상하이·서울·홍콩 등에서 팝업스토어를 낸 데 이어 올해부터 베이징·도쿄·오사카·대만에 매장을 연이어 열며 K패션 대표 주자의 입지를 갖춰 나가고 있다.
아울러 의류보다 성장률이 높은 신규 잡화 PB브랜드 '일모'와 '라베노바'도 간판급으로 키워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복안이다.
패션업계의 한 전문가는 "유니클로가 매출 1조원 시대를 여는 동안 국내 패션을 선도하는 삼성물산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지만 이서현 사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패션업계가 조금이나마 활기를 띄지 않겠냐"며 "각각의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심희정·신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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