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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의 우리 술의 멋과 맛] (5)바보들의 행진과 함께 한 술





세월을 지나 세대가 달라져도 비슷한 감동을 느끼는 영화가 있다. 이제는 별이 되어 버린 두 거장, 최인호와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이 그것이다. 영화가 나오고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땅의 청년들이 겪는 고뇌와 갈등, 좌절 그러나 삶을 지탱해주는 뜨거움과 사랑은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 때와 다름없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1975년 대학가는 휴교령이 반복되며 소위 긴조(긴급조치)세대라 불리는 70년대 학번들에게는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이 금지되던 시기였다. 하늘이 온통 잿빛 같던 때였지만 그래도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병태의 친구 영철이 분홍색 고래를 잡겠다는 순수한 꿈을 이야기한다. 그나마 이들의 가슴을 채워줄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주제가로 쓰인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라는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과 커다란 맥주잔이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출처=네이버영화



우리 술 역사에서 1970년대는 술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의미 있는 때이기도 하다. ‘OB’라는 브랜드로 친숙한 동양맥주주식회사의 맥주가 그동안 압도적이었던 탁주(막걸리)의 시장 점유율을 제치고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맥주 시장은 동양맥주와 조선맥주(현 하이트맥주) 두 업체가 경쟁하던 독과점시장이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경쟁사만 있었지 경쟁은 없었다.

1973년 한독맥주가 수출부조건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젠백(Isenbeck)‘이라는 상표로 국내시장에 뛰어들며 단숨에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 차지했지만, 양 사의 밀월관계가 너무나 견고하여 1977년 조선맥주에 인수당하고 곧 문을 닫는다. 이후 지금까지 양 사는 독과점이라고 욕먹지 않을 선에서 적당히 시장을 나누며 공생하고 있다. 자연히 소비자들의 기호는 뒷전으로 밀려난 채.



영자가 입영열차에 매달려 병태와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있다. /출처=네이버영화



그러나 “병태야, 고개를 내밀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떠나가는 애인의 입영열차에 매달려 가슴 찡한 키스를 나누는 영자, 그리고 “고래는 동해 바다에도 있지만, 내 마음 속도 있어”라며 고래를 찾아 떠난 영철은 거센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고, 영화에서 보듯 죽음으로 밖에 꿈을 이룰 수밖에 없던 시대, 맥주는 젊은이들이 모인 자리에 늘 함께 하며 그들을 위로해왔다. 술은 가난과 부자유, 불공정한 사회 속에 뜻을 펼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자기를 불 사르며 달래주던 친구였던 것이다.

80년대 학번들 역시 어느 시인의 시처럼 실패한 혁명의 쓴 맛과도 같은 소주가 아니었다면 위로받기 힘들었던 세대이다. 이후 90년대 학번들 또한 위스키, 와인, 바이주 등 수입 주류들의 홍수와 만개한 대중문화 속에서 애매하다 못해 때로는 초라함을 토로했던 세대이다. 2000대년를 성큼 들어선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며 친구 영철이 물었을 때 “그렇고말고. 걱정하지마. 곧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질거야”라고 대답했던 병태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이렇듯 시대가 변함에도 각각의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체험에는 공유할 수 있는 ‘별반 다르지 않은’ 무언가들이 존재해왔다. 아마도 그것은 술인가 한다. /이화선 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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