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질병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집을 방문하거나 병원에서 진료할 때 가면마스크를 착용하고, 특히 전염병 환자 진료 시에는 필수적으로 마스크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거즈나 천 소재로 귀에 거는 형태의 마스크는 1919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감기, 즉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부터 널리 사용됐다고 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은 오랜 세월 아픈 사람이나 가까이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마스크의 이미지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황사와 미세먼지가 흔해지고,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마스크가 생필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마스크를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젊은 층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마스크 업계는 다양한 크기와 용도, 디자인의 마스크를 앞다퉈 출시하기 시작했다.
마스크업계 대표 주자인 유한킴벌리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으로 일반인 마스크 매출 비중이 기업간거래(B2B) 비중을 넘어섰다. 과거에는 의료계 종사자나 먼지가 많은 작업장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비율이 절대적이었지만 마스크에 대한 일반인 관심이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기업간거래 비중을 앞지른 것이다. 매출 규모 자체도 크게 늘었다. 유한킴벌리의 지난해 마스크 매출은 전년대비 무려 500% 이상 급성장했다.
마스크의 일반화와 함께 대중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유한킴벌리가 전국에 거주하는 20~40대 여성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묻는 질문에 ‘건강을 관리하는 사람’이 41%로 가장 높아 마스크 착용에 비교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아픈 사람’이라고 답한 사람은 절반 수준(23%)에 불과했고 △성형수술·시술을 한 사람(21%)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사람(8%) △별다른 생각이 없음(5%) △유난을 떠는 사람(2%) 순으로 나타났다.
또 일회용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로 바이러스성 질병 등과 상관없는 ‘황사와 미세먼지 차단’이 819명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어 △메르스와 같은 유행성 질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596명) △공공장소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454명) △알레르기 때문(442명) △방한용(256명)의 순으로 조사됐다. 유한킴벌리의 김영일 부장은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마스크 판매처도 약국 위주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는 대형마트는 물론 편의점과 드럭스토어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마스크가 일상용품으로 정착하면서 다양해진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진화도 거듭되고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많을 때, 목이 건조할 때, 어린 자녀 혹은 패션이 민감한 경우 등 본인 또는 가족의 상황과 나이, 취향에 맞게 제품을 골라 쓸 수 있는 제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기능적으로 분류하면 먼저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있는 기능성 ‘황사 마스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지정한 ‘의외 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황사 마스크는 미세먼지 차단효율(%)을 ‘KF(Korea Filter)수치’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흔히 사용되는 제품이 KF80 제품이고 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강화되고 감염원을 막는 방역 기능이 추가된 제품이 KF94 마스크다.
의약외품으로 허가된 ‘보건용 마스크’는 지난달 기준으로 41개사 165개 제품이다.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다양한 색상과 무늬를 넣은 ‘크리넥스 스타일 마스크’와 카카오프렌즈 모양의 제품도 나와 인기다.
업계 관계자는 “방한용으로 구매할 때는 어떤 마스크든 관계없지만, 황사나 미세먼지 방지가 목적이라면 의약외품이라는 문자와 KF80또는 KF94라는 표시를 꼭 확인해야 한다”며 “보건용 마스크를 사용할 때에는 수건이나 휴지를 덧댈 경우 밀착력이 떨어져 오히려 차단 효과가 반감되고 세탁하면 모양이 변형돼 기능을 유지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파악해 해결한 이색 신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최근 유한킴벌리가 선보인 ‘크리넥스 가습촉촉마스크’다. 이름 그대로 착용 시 가습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마스크로, 호흡기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 제품은 동봉된 패드를 수돗물 등 식수에 적셔 마스크 안쪽에 있는 좌우 포켓에 넣어 사용하면 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마스크가 연예인 ‘공항패션의 완성’, 아이돌의 ‘출근 패션’으로 불리며 뜨거운 패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명동 길거리에는 각종 문구나 고양이 수염 무늬, 이빨 모양 등이 그려진 형형색색의 마스크를 파는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 온라인에서도 패션 마스크 전문몰이나 편집숍이 인기리에 영업 중이다. 이런 온라인몰에서는 ‘피팅 모델’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검은색이나 회색, 노란색은 물론 체크무늬와 노르딕무늬, 꽃무늬 등 패턴까지 다채로우며 일부 제품은 조그만 뿔 모양의 ‘징’이 알알이 박혀있는 제품이나 홀로그램이 들어간 것도 있다. 가격은 일반 마스크보다 비싼 1만원에서 2만5,000원 수준이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마스크 시장이 4,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일본은 꽃가루가 날리는 3~5월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스크 사용이 일반화돼 있다”며 “우리나라는 마스크 시장이 막 발걸음을 뗀 시기여서 앞으로 더욱 다양한 생활 맞춤형 상품들이 개발되고 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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