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 국내 공연시장이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관객이 급감한 데 이어 스타마케팅·해외작품에 대한 비싼 로열티 지급 등 기본적으로 허약한 체질이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17일 서울경제신문에서 신시컴퍼니·PMC프러덕션·CJ E&M·서클컨텐츠컴퍼니 등 대형 뮤지컬 제작·기획사 4곳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말 기준 감사·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반토막 수익이 속출했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를 제작하는 PMC프러덕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2억원에 그치며 전년(34억원)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영업 외 비용까지 반영한 당기순이익은 21억원에서 12억원으로 반토막났다. PMC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난타’ 관객이 메르스로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공연 원가와 대손상각비가 불어나 비용 지출이 늘어났다.
뮤지컬 ‘모차르트’·‘레베카’·‘마타하리’ 등을 만든 EMK와 인터파크가 2014년 공동 출자해 만든 서클컨텐츠는 설립 후 1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122억원으로 전년(253억원)의 반토막으로 쪼그라들었고, 영업이익은 2014년 12억에서 지난해 6억원 손실로 바뀌었다. 특히 영업외 지출이 불어나며 1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서클컨텐츠는 인터파크가 70%, EMK 엄홍현 대표가 30%의 지분을 지닌 합작회사로 주로 EMK 제작 뮤지컬을 공동기획·투자하고 있다. EMK가 지난해 제작한 작품은 ‘팬텀’과 ‘엘리자벳’이다. 둘 다 비교적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출연료를 비롯한 높은 비용 구조 탓에 손실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지난해 뮤지컬 ‘아리랑’·‘시카고’, 연극 ‘렛미인’ 등을 올린 신시컴퍼니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33억원으로 전년(26억원 손실)보다 적자가 더 커졌다.
공연 시장의 큰손으로 투자의 한 축을 담당했던 CJ E&M의 ‘공동투자 철수’도 업계에는 큰 타격이 됐다. CJ E&M은 2014년 회기중 공연 공동투자 사업을 정리하며 몸집을 줄였다. 공동투자의 도산 및 정산 마찰로 손실이 커지자 자체 판권 확보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2014년 말 기준 CJ E&M 공연 사업 부문의 영업손실 규모는 426억 원으로, 이 중 중단사업(공동투자) 부문의 몫이 326억원에 달했다. 공동투자를 접은 공연 사업부문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2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 자본잠식을 비롯한 재무건전성 문제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설앤컴퍼니와 오디뮤지컬은 아직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업계에선 예상치 못한 악재보다는 이미 드러난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작품 수가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출연료·라이선스 거품과 고가의 티켓 가격, 2~3개월 공연해 수익을 내겠다는 단기적인 전략으로 체질개선이 요원하다는 이야기다.
한정된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고비용의 스타마케팅과 외국 작품 라이선스 경쟁 등 물량공세 전략이 여전하다. 서클컨텐츠의 경우 지난해 공연 관련 지출 128억원 중 배우 인건비가 31억원으로, 제작비(12억원)의 세 배를 차지했다. 서클컨텐츠가 특정 작품에 일부 비용만 투자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배우 출연료는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지난해 공연시장 전체 매출은 사실 전년 대비 크게 줄지 않았지만 개별 제작사의 수익구조는 나빠졌다”며 “메르스라는 악재도 분명 작용했지만, 뮤지컬 시장이 기존의 전략으로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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