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춘천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던 배모(59)씨는 요즘 부채를 갚으라는 채권자들의 독촉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 30만의 도시인 춘천에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얘기를 들었던 배씨는 과당경쟁의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1월 폐업을 신청했다. 배씨는 “노후자금 마련은 고사하고 당장 일자리가 없어서 개인사업을 하는 친구들의 사무소를 기웃거리는 게 일과가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에서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주유소가 경영난을 못 이기고 곳곳에서 문을 닫으면서 길거리의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바닥의 기름탱크를 철거하는 등 폐업하는 데만 최소 1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탓에 폐업정리를 못 하고 빗장을 걸어잠근 주유소들이 부지기수다.
18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까지만 해도 1만3,282개에 달했던 전국의 주유소 수는 올해 1월 현재 1만2,704개로 급감했다. 매년 폐업하는 주유소 수가 적게는 220개에서 많게는 310개에 달한다. 폐업 숫자도 서류상으로 접수가 안 된 자진 휴업 등을 포함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주유소의 열악한 영업환경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은 1.8%로 일반 타소매업의 영업이익률(6.1%)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한국주유소협회의 한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주유소에 대한 경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 주유소당 연평균 매출액은 38억원, 영업이익은 3,800만원에 그쳤다”며 “영업이익률이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014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저유가는 주유소업계의 시름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소비자들은 국제유가가 ℓ당 30~40달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유소의 폭리로 기름값이 크게 낮아지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내지만 이는 현실과 크게 다르다는 게 주유소업계의 설명이다. 국내 정유업계 ‘빅4’가 저유가를 등에 업고 올 1·4분기 전년 동기보다 2조원 늘어난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주유소업계는 저유가의 특수를 전혀 누릴 수 없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오히려 유가하락으로 주유소의 마진폭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주유소업계는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는 휘발유와 경유에 각각 ℓ당 746원·529원을 물린다. 지난해 말 기준 ℓ당 휘발유와 경유의 소비자 가격에서 차지하는 유류세의 비중은 각각 59.4%, 50.7%에 달했다. 업계는 과도한 세금부담을 낮추면 유류 소비가 증가하고 마진폭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재정당국의 입장은 완고하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나라 곳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난해 거둬들인 국세(208조2,000억원)의 9.4%에 해당하는 유류세 수입(22조원)을 절대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유소의 경영상태가 갈수록 나빠지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업계의 경영실태 파악에 나섰다. 산업부는 오는 5월부터 5개월간 ‘주유소 경영실태 진단 및 경쟁력 강화’에 대한 용역을 시행할 예정이다. 2014년 8월 실태조사를 시행한 후 2년 만이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주유소의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주유소의 경영실태와 유통시장 현황, 개선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 용역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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