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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이란 또 치킨게임…"유가 25弗까지 추락" vs "단기충격 그칠것"

이란, 내년 3월까지 증산 고수하자

사우디도 동결 합의 깨며 힘겨루기

일각 "투기세력 빠지면서 수급 불균형"

"공급과잉 완화로 조만간 안정" 분석도

알리 알나이미(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1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셰러턴호텔에서 열린 산유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18개국 석유장관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산유량 동결을 놓고 5시간여 동안 격론이 벌어졌으나 중동의 대표적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힘 겨루기로 합의가 불발됐다. /도하=신화연합뉴스




중동 내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힘 겨루기로 주요 산유국의 산유량 동결 합의가 불발됐다. 국제유가가 곧바로 6% 이상 폭락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유가 추가 하락 여부로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 초 이후 동결 기대감에 힘입어 50% 이상 오른 국제유가가 또다시 20달러 중반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우디-이란, 석유패권 놓고 치킨게임=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주요 산유국들은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회의에서 생산량 동결을 놓고 5시간여 동안이나 격론을 벌였지만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 회의에는 사우디·러시아·베네수엘라 등 세계 산유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18개국이 참여했다.

합의가 무산된 것은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 16일까지만 하더라도 이란의 참여 없이도 산유량을 동결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고 회의 참가국들은 합의문 초안까지 작성했다. 하지만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16일 저녁 본국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은 뒤 “이란 등 모든 산유국의 동참 없이는 동결에 합의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사우디로서는 생산량을 동결해도 이란이 증산할 경우 시장점유율만 뺏기고 국제유가 상승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란은 현재 하루 310만배럴인 산유량을 내년 3월까지 서방의 경제제재 이전 수준인 400만배럴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란도 당초 회의에는 참석할 계획이었지만 카타르가 “동결 합의에 서명할 국가만 참석하라”고 통보하자 16일 저녁 아예 참석을 취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이란의 양보를 얻어낼 것으로 기대했다가 이란이 강경론을 고수하자 합의를 깨버린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 관계까지 단절하며 역내 패권을 다투는 양국 간 충돌이 동결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석유장관은 “추가 합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 당분간 정부 차원에서 산유량을 제한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추가 동결 논의는 오는 6월2일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정례회의에서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30달러 밑으로 하락” vs “조만간 안정”=이번 합의 실패로 18일 아시아 시장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북해산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전 거래일보다 6.7%와 6.9%씩 급락했다. WTI 가격은 산유량 동결 논의 소식에 힘입어 올 2월 12년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26.21달러를 기록한 후 54% 급등했다. 브렌트유도 1월 27.88달러에서 55% 상승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의 유가급등이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글로벌 경기둔화에 공급과잉 물량이 하루 150만배럴에 이르는 상황에서 투기세력이 유가를 단기간에 급등시켰기 때문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이달 12일 현재 WTI 가격 상승에 베팅한 선물옵션 계약 규모는 일주일간 11% 늘면서 두 달 전의 2배로 늘었다.

나티시스의 아비셰크 데시판데 석유 애널리스트는 “합의 실패는 극단적인 (유가) 하강 시나리오로 OPEC의 공급조정 능력에 대한 시장의 믿음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투기세력이 빠져나가면서 국제유가가 수일 내 배럴당 30달러까지 하락하고 수급 균형은 내년 중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DNB뱅크ASA의 경우 유가가 과거 저점인 25달러까지 폭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시장이 단기 충격은 받겠지만 30달러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저유가 지속에 미국 셰일 업체 등이 타격을 받으면서 공급과잉은 다소 해소됐다는 것이다. 지난주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석유생산량이 지난해 하루 940만배럴에서 올해 860만배럴, 내년에는 800만배럴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컨설팅 업체인 PIPR의 게리 로스 설립자는 “일부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미국의 생산감소 등으로 이미 공급과잉 해소가 시작됐다”며 “합의 실패가 부정적이지만 (여파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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