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은 한계상황에 몰린 국내 산업 중에서도 가장 벼랑 끝에 서 있다. 바닥을 확인하고 회복세로 돌아선 철강업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조선업과 달리 국내 해운사들은 해외 유력선사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다 당분간 시황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재무상황 같은 기초체력이라도 탄탄하다면 언젠가 돌아올 호황을 기다릴 수 있겠지만 날로 늘어가는 빚 부담에 하루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며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확대에서 비롯된 공급과잉 상황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국내 선사들은 값비싼 용선료(선박임대료) 부담까지 안고 있어 이대로라면 현대상선뿐만 아니라 한진해운도 자율협약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모그룹까지 동반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현대그룹뿐만 아니라 한진해운의 모그룹인 한진그룹 전체에 부실이 전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1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상하이에서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 운임지수인 SCFI(유럽)는 4월 셋째 주 TEU당(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 271달러를 기록 중이다. 유럽행 운임은 지난 2월 마지막 주부터 200달러대로 떨어진 후 4월 첫째 주에만 339달러로 반짝 상승한 뒤 다시 200달러대로 돌아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2월 넷째 주~4월 첫째 주) 마지막 주 평균 운임(697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컨테이너운임은 사상 최저수준을 기록하며 국내 해운사를 포함한 세계 해운업계가 동반 침체를 겪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운임은 실적에 직결되는 만큼 경영정상화를 위해 몸부림치던 해운업계는 불황의 늪에 더 깊숙하게 빠지게 됐다.
운임이 바닥을 기는 이유는 공급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세계 컨테이너물동량은 지난해보다 4.2% 증가한 1억8,300만TEU로 예상되지만 선박 공급도 4.6% 증가하고 1만2,000TEU급 이상 대형선박은 26%나 늘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지난 1~2월 물동량이 2015년보다 20% 이상 증가했지만 운임은 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지간한 호황으로는 의미 있는 운임 상승이 어렵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해운사가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글로벌 해운사 2~3곳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공급과잉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사들을 옥죄는 또 다른 걸림돌은 용선료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지난해에만 용선료로 각각 1조8,793억원, 9,288억원을 냈다. 선박은 통상 10년 이상 장기임대가 대부분이다. 지금보다 운임이 5~10배 높던 해운 호황기에 빌린 배들은 용선료가 당시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요즘처럼 운임이 바닥을 길 때는 아무리 영업을 해도 손해가 나는 구조다.
채권단이 용선료를 낮춰야 해운사를 지원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용선료를 내리지 못하면 유동성 위기가 언제든 반복된다는 우려가 깔렸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도 이날 “해운사들이 내놓은 모든 자구책이 이행되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이행되기를) 희망한다”며 해운사들의 용선료 조정 노력에 발맞춰 돕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용선료 인하는 어디까지나 선주사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받아줘야 하는 부분인 만큼 국내 선사의 의지와 관계없이 조정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해운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선박 공급 과잉이나 고(高)용선료 같은 핵심요인들이 하나같이 해운사들의 통제권에 벗어나 있는 만큼 국내 해운사들이 기댈 곳은 정부뿐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운업은 비상시 제4군의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수출 중심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산업”이라며 “프랑스나 덴마크 등 각국 정부가 해운업을 지원하듯 우리도 정부를 중심으로 위기의 해운업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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