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 유무만으로도 사람의 인상이 크게 달라지는 법. 캐릭터의 성격과 특징을 극대화해 보여줘야 하는 무대 예술에서 머리 모양은 의상·메이크업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
헤드윅은 ‘트렌스젠더’가 주인공인 작품인 만큼 그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소품이 많이 등장한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화려한 가발이다. 한창 공연 중인 새 시즌에는 5명의 헤드윅을 위해 총 25개(각 5개)의 가발을 만들었다. 긴 생머리부터 뱀 모양으로 앞머리를 한껏 띄워 올린 모양, 레이디 가가를 연상케 하는 리본 머리까지. 색깔도 금발·핑크·보라 등 다양하다. 헤드윅 제작사 관계자는 “헤드윅에서 가발은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라며 “의상팀과 배우가 함께 의논해 각자의 개성을 살린 가발을 수작업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뮤지컬 ‘위키드’에 등장하는 금발 마녀 글린다의 머리도 그녀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핵심 소품이다. 특히 일명 ‘소라빵 머리’는 통통 튀는 글린다의 백치미를 잘 드러낸다. 위키드의 모든 캐릭터가 쓰는 가발은 90% 이상 인모를 사용해 관리가 까다로운데, 글린다의 머리는 그 중에서도 손이 가장 많이 간다. 인모 가발은 사람 머리처럼 열과 화학 성분에 자주 노출될수록 손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세 번 전용 샴푸로 세탁한 뒤 자연 건조해야 한다. 특히 글린다 가발은 건조 후 별도의 열 세팅으로 굵은 컬을 만들어야 해 관리가 가장 까다롭다.
배우 본인의 머리카락을 기꺼이 소품으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주인공 김준수는 2014년 초연과 올 1월 재연에서 드라큘라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본인의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했다. 초연 당시 제작사에서 검은색이나 갈색의 올백 머리를 제안했지만, 김준수는 “백발인 드라큘라가 피를 빨고 그 피가 머리로 전이된 듯한 느낌을 주고 싶다”며 아이디어를 냈다. 관객 반응은 좋았지만, 관리가 만만치 않았다. 물이 쉽게 빠지는 붉은 머리인지라 5일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러 염색을 했다. 의상팀도 매 공연 뒤 그의 흰 셔츠에 흘러내린 붉은 물을 지워야 했다고.
무대 공연에서 소품은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양념으로 활용된다. 이 작은 예술품 중 하나인 ‘헤어 스타일’은 단순한 치장을 넘어 한 올 한 올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결과물이다. 땀 냄새와 두피 손상을 기꺼이 감수한 배우들의 노력이기도 하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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