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삼성·LG그룹의 연구개발(R&D)이 있기까지 초창기 국가적 지원과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기반 위에 연구원과 기업, 국가가 더 협력해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과학의 날인 21일 KIST 설립 초기 연구원으로 한국 과학의 발자취를 함께 한 안영옥(84·사진) 박사는 과학의 날 행사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초기 과학기술 지원이 시작됐던 지난 1960년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밝혔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해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박사를 딴 그는 불소화학 분야의 1세대 원로 과학자다.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KIST를 만들 때 귀국한 과학자 18명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한국은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기업에서 5년 이상 연구한 한국 과학자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했다”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연구소인 듀폰연구소의 풍족한 연구 생활을 포기하고 과학 장비·연구기반이 전혀 없는 한국에 돌아왔다”고 술회했다.
귀국 이후 집중한 연구는 에어컨 냉매인 프레온가스 개발이었다. 당시 국내에 프레온을 생산하는 기술 기반이 전무했지만 점차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프레온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기술 개발에 전념했다. 성과는 1970년대 KIST 내 시험 공장을 세우면서 드러났다. 안 박사는 “외국에서 연구하면서 프레온을 만드는 기술, 엔지니어링을 알고 있는 연구원들이 힘을 합쳐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프레온을 생산해냈다”며 “그 결과 1975년 산업은행이 출자해 울산화학프레온공장을 지었고 이게 지금까지도 불소화학공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레온가스 생산에 필요한 무수불화수소를 만드는 개발 등이 동반되면서 불소화학 연구가 꽃피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외국 연구소에서 일할 때는 연구를 의뢰하는 기업이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직접 연구원들이 뛰어다니며 의뢰인을 찾아야 했다”며 “초기 연구원들 중에 3~4년 만에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18명 연구원 중 3명이 사망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여러분들은 박사니깐 다 알지 않느냐’며 연구원들을 구로공단 공장으로 보내 기술 지도를 하게 했다”며 “장난감·낚싯대를 만드는 공장에서 새로운 공정을 배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힘들여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외국 기업에서 기술과 공장을 사오자는 인식이 강했지만 기술 개발에 나섰던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원동력이라는 게 안 박사의 지론이다. 그는 “삼성·LG그룹이 지금의 R&D 시스템을 갖춘 것도 다 초기 과학자들이 조언해준 것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안 박사는 1978~1982년 삼성그룹 개발실 전무로 그룹 전반의 기술 개발 기반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안 박사는 이제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R&D에서 과학기술이 꽃피울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국가가 80, 기업이 20의 비중으로 과학 연구를 진행했다면 이제는 정반대로 되고 있다”며 “앞으로 국가의 지원하에 기업이 더 많이 연구 개발하는 풍토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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