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육해공을 잇는 종합물류기업을 세운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뜻을 잇기 위해 경영난에 빠진 한진해운을 인수했지만 상황이 악화하면서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입장을 바꿔 한진해운을 빨리 정리하라며 압박을 가하면서 조 회장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한진해운 지원에 대한항공까지 유탄=지난달 31일 신용평가기관인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했다. 등급전망 역시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 어려운 상황에도 두 배 이상 영업이익을 늘리는 등 경영성과를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항공이 대주주로 있는 한진해운 때문이다.
조 회장은 지난 2006년 별세한 동생 조수호 회장의 부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이끌던 한진해운을 2014년 인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 시황이 악화하면서 한진해운이 4,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난을 겪자 내린 결단이었다. 한진해운 인수를 통해 2세 경영의 시작으로 찢어진 종합물류기업을 재건해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각오였다. 다행히 효과를 보는 듯했다. 한진해운은 조 회장이 경영권의 키를 쥔 2014년에는 240억원, 지난해 36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해운업황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조 회장의 노력도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당장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은 2013년부터 한진해운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올 2월 말에는 한진해운의 영구채 2,200억원을 인수하는 등 6,5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부채 규모 5조6,000억원, 부채비율 847%로 번 돈으로 대출을 갚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모습이다.
한진해운의 어려움에 대한항공까지 힘겨워하는 모습이다. 이달 초 대한항공은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 대한항공은 “추가로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지원 계획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 회장 결단만 남아” 채권단 지원 무게=금융 당국과 채권단은 한진해운의 독자적인 생존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 회장에게 결단을 요구했다. 그룹 차원의 지원이나 채권단의 추가 지원 중 경영 정상화 방안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당국과 채권단은 한진해운 측의 결정이 나오는 즉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21일 “3월 중순께 추가적인 지원 없이는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는 불가피하다는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 결과가 나왔다”며 “이를 토대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조 회장을 직접 만나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받을지, 그룹 차원에서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지원을 단행할지 결정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늦어도 다음주께는 한진해운 측이 경영 정상화 방향과 관련한 입장을 채권단에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부채 규모가 약 5조6,000억원에 이르는 만큼 그룹 차원의 지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만기를 연장하고 출자전환을 통해 부채를 줄이는 방법 말고는 사실상 해법이 없다는 게 채권단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종 결단은 조 회장의 몫이지만 사실상 한진그룹의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은 핵심 계열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진해운의 경영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갈 수 있어 조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아직 조 회장이 최종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조건부 자율협약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며 “한진 측에서도 채권단이 수용할 수 있는 자구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1일 오후 한진해운은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자녀들이 보유하던 한진해운 주식 96만7,927주(0.39%)를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다. 21일 종가로 하면 약 30억원 규모다.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대한항공의 특수 관계인인 최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 지분 전량을 매도하면서 한진해운의 향후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유수홀딩스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며 과거 계열분리 때부터 공정위에 잔여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고 밝혀왔다”며 “지난해에도 두 자녀는 지분 일부를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강도원·조민규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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