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해양 기자재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A사의 P사장은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공장을 돌리고는 있지만 몇 달간 조선업종의 불황이 더 이어질 경우 업종 전환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회사경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P사장은 “조선업 불황과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5년전에 비하면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며 “눈물을 머금고 직원을 20% 가량 줄였고 생산라인도 1주일에 3일 정도만 가동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2. 부산 녹산산업단지에서 선박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B업체는 경영악화에 시달리다 고육지책으로 계열사를 매각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조선업 불황과 수주절벽으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빅3’가 발주물량 축소와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34% 급감했고 영업이익은 3년째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업 불황이 길어지면서 대기업에 선박부품과 해양플랜트 기자재를 공급하는 중소 납품업체들이 고사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거나 사업을 아예 접는 업체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올 1·4분기 조선3사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3척을 수주한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척도 수주를 하지 못해 그야말로 수주절벽에 직면해 있다”며 “조선3사가 사업 구조조정과 대규모 감원에 나설 경우 납품업체들의 경영난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선해양기자재조합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의 부품생산 규모는 지난 2012년 12조3,7005억원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10조원 아래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수출규모도 27억달러에서 19억달러로 급감했다. 조선 3사의 수주절벽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우울한 실적이다.
문제는 앞으로 전망이 더 우울하다는데 있다. 부품업체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조선사는 한때 400개에 달했지만 글로벌 조선업 불황 여파로 구조조정을 단행해 현재는 50여개사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내수와 수출이 모두 어려워지는 ‘이중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라고 말했다.
선박수리 업체들도 폐업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리업체의 한 대표는 “매출은 이미 반토막이 났고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우리도 인원 정리에 들어갔다”며 “일본으로부터 중고 선박을 수입하는 것이 자율화된 상태에서 새로 선박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품목다각화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선박부품 기술을 응용해 육상 교량과 원자력발전소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건설경기도 좋지 않아 애로를 겪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발주물량이 줄고 있는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일본과 중동, 동남아 등으로 수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들이 자국 선박 관리를 강화하고 있어 신규시장 개척도 버거운 상황이다.
선박부품 업체 관계자는 “지금도 겨우 숨을 쉬고 있는 상황인데 하반기에는 물량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폐업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며 “새로운 선박을 건조할 경우에는 국산화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정명·한동훈·강광우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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