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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인륜을 저버리고 발뺌하는 '옥시'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고와 관련해 영국계 다국적 기업 옥시레킷벤키저가 내놓은 입장을 읽다가 눈을 의심했다. 피해자의 고통에 통감하며 50억원을 추가 출연하겠다는 입장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오랫동안 제품의 안전 관리 수칙을 준수해왔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출산 전후의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 146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에 이른 것은 5년 전인 2011년 8월의 일이다. 사망자의 3분의 2에 달하는 103명이 옥시 제품을 사용했다. 이 또한 정부에서 인정한 사망 피해 사례일 뿐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진정어린 사과를 하려 했다면 굳이 이런 문구가 필요했을까.

발표 시점 자체도 석연찮다. 각각 22명 및 15명의 사망자를 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사고 5년 만에 처음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을 때도 옥시는 침묵했다. 이후 3일 동안 옥시 관계자의 검찰 소환과 옥시가 제품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자료를 무더기로 삭제한 정황 등이 잇따라 포착됐다. 가까스로나마 입장문이 나오기까지 최대 가해업체를 향한 압박 수사가 필요했던 셈이다.

옥시가 안전 관리 수칙을 잘 준수해왔다는 입장을 뒤집는 증거와 정황들도 시시각각 흘러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위험성을 알고도 팔았다는 것이다. 또 책임을 피하려 증거를 사실상 인멸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옥시는 사건이 일어난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식회사에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유한회사로 변신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피해자에 대한 보상책과 사과가 나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발빠르게 움직였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를 반박하기 위해 서울대와 호서대에 용역비를 주고 실험을 해 유리한 내용 만을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흡입 독성 동물실험 용역을 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불리한 보고서를 내놓자 수령을 거부한 정황도 있다. 소비자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홈페이지에 올린 부작용 관련 글도 검찰 수사 전에 삭제했다. 이로 인해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옥시에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에서 관계자를 소환하고, 옥시 본사까지 수색한다고 한다. 직원과 연구원 등 관계자들의 증언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고 있어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빠른 전개가 일면 통쾌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일에 어째서 5년 씩이나 소요된 건지 답답할 뿐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고에 얽힌 기업들의 안전 불감증과 인륜을 저버린 행태는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마땅한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기업의 이해득실만 따진 입장 발표 대신 피해자들을 향한 진정한 사과도 하루 빨리 나오길 바란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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