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30세 왕자가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겠다”며 야심 찬 사회ㆍ경제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금융·군수·물류·관광 등의 민간산업을 육성하고 대대적인 도시개발로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달성 기간이 너무 짧아 비현실적이고 재정긴축, 여성 사회진출 확대 등은 사회 혼란을 촉발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모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부왕세제는 이날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경제개발계획인 ‘비전2030’을 발표했다. 그는 “석유에 중독된 위험한 현실에서 벗어나 실업·주택 문제 등을 해결할 것”이라며 “계획이 실행되면 오는 2020년까지 석유 없이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 살만 부왕세제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81) 국왕의 아들로 국방장관이자 왕실의 경제ㆍ개발위원회 의장이기도 하다. 1985년 8월생으로 31세의 나이에 군사와 경제권력을 한 손에 쥔 최고 실세다. 그는 지난 17일 카타르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간의 산유량 동결 논의 때 합의를 무산시키는 등 석유전쟁을 이끌고 있고 이란과의 단교, 예멘 공습 등을 주도했다. 사우디의 종교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고 국왕 사후 사촌 형인 사우드 빈나예프(57) 왕세자를 제치고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선 그는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아람코 지분 5% 미만을 자국 증시에 상장하기로 했다.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최소 2조달러로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5,800억달러)의 4배에 이른다. 또 사우디 도시개발과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 국부 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의 자산규모를 현행 1,600억달러에서 2조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만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무르겠다는 것이다.
또 광공업과 군수산업 육성, 관광 인프라 확충을 통한 성지순례객 증가 등의 계획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의 민간 부문 기여도를 현행 40%에서 2030년까지 6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의 노동참여율을 늘리고 종교 교육이 중심인 학교 교재도 바꾸기로 했다. 빈 살만 부왕세제는 “‘비전2030’은 완전한 국가개조 계획”이라며 “물류허브 건설, 수도인 리야드에 금융자유지역 지정은 재정수입을 다양화하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빈 살만 부왕세제의 승부수가 방향은 맞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민간경제가 급속히 성장하지 않을 경우 의료와 교육 부문 민영화, 소비세 신설, 에너지보조금 폐지 등의 긴축조치로 생활고가 심화할 경우 풍부한 복지혜택을 대가로 왕정독재를 용인하는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반면 여성 사회활동 장려, 외국인 인력 유치, 종교 교육 축소 등은 성직자 등 보수세력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요인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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