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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카터 독트린





1980년 1월 23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페르시아만을 장악하려는 어떠한 외부 세력의 시도도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군사력을 포함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격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른바 ‘카터 독트린’이었다. 발단은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특히 소련은 중동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였던 남예멘을 지원하는 등 전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까지 위협했다. 카터는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미 해군의 페르시아만·인도양 전력을 늘렸고 소련에 대해 첨단 기술 수출 중단 등 제재에 나섰다.

이후 40년 가까이 카터 독트린은 미국 외교 정책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카터 행정부가 유사시 중동으로 파견하기 위해 창설한 ‘신속배치 합동부대’를 중부사령부로 확대 재편했다. 미국이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은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안보·석유 협정을 유지해온 것이다. 미국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사우디 방어를 위해 병력 50만 명을 파견했고 2003년에는 2차 걸프전을 일으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셰일 혁명 등으로 미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카터 독트린은 종말을 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집권 1기 때 사우디의 주요 석유 시설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는데도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완전 철수시켰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불평등한 광물 협정을 강요하면서 카터 독트린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은 안보 보장 약속 없이 협정을 맺더라도 우크라이나 방어에 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만 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카터 독트린보다 더 믿기 어려운 공수표에 불과하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냉혹한 국제 현실 속에서 생존하려면 자주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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